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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엄마 가을 햇살은 퇴근 무렵에도 정수리에 앉아 뜨겁게 안아준다. 그늘에 들어서면 썰렁해서 반소매 아래 나온 팔을 양손으로 어긋나게 슬그머니 안게 된다. '그래, 오늘도 일 없는 사무실에서 시간 보내느라 지루했지? 이제 집에 가면 일거리 넘칠 거야!' 회사에 가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수월해서인지 출근길은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인데 집으로 퇴근하는 길은 오히려 집안일을 해야 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가짐이 이리된다. 엄마로 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솜씨가 있든 없든 반찬을 만들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다림질도 해야 한다. 종점이라 기사가 버스 밖에서 나른함과 함께 귀찮은 표정을 짓고 섰다. 묻지도 않는 말을 건네고 버스에 탄다. "버스 타고 있을게요!" 그냥 무작정 타도된다만, 매번 지체할 겨를.. 2018. 9. 13.
불량품 비너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림을 업어왔다. 요즘 자칭 비너스라 우기며 살다 보니 위의 명화 속 비너스가 나랑 비슷한 느낌이다. 넉넉한 뱃살이며 두툼한 허벅지까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바다에서 떠밀려온 조가비 속에서 탄생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무표.. 2018. 8. 29.
행인 화요일 저녁 7시 20분 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켜 현관을 나섰다. 문화센터 수영 강습이 있어 억지로 나서는 중이었다. 빨리 걷고 싶은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빨리 걸어지지도 않는다. 더위는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날 구속하고 놔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파트 상가에 다다르.. 2018. 8. 21.
시집(이상덕 시인, 이규자 시인, 권상진 시인, 김미옥 시인)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인연을 맺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서툴게 문을 연 때가 2005년도였으니 어언 14년째다. 신변잡기와 넋두리, 잡다한 이야기를 올리며 나름 재미를 붙였다.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배우는 것이 많아 보람도 느낀다. 오래전 이데아 이상덕 시인님의.. 2018. 8. 7.
저녁 산책길 2 7월에서 9월에 많이 핀다는 망초가 흐드러진 모습이다. 들판을 보면 곳곳에 오래도록 눈길을 끄는 망초를 누구나 보게 되고 자연스레 눈이 간다. 다른 꽃보다 흔하디흔한 탓에 귀하다거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저 한낱 서민에 불과한 평범한 나와 같은 존재로 보인다. 특별.. 2018. 7. 27.
벽을 타고 오르는 꽃 공장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떡하니 마주치는 풍경입니다. 봄날 발견한 작은 콩잎 닮은 싹이 점점 자라더니 이렇게 컸어요! 에어컨 실외기 뒤에서 벽을 짚고 오르더니 점점 가지도 뻗고 왕성한 광합성 작용으로 잘 자랍니다. 영양분을 얻으려고 뿌리는 땅속 어디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처음 시작된 줄기는 그리 튼실해 보이지 않았지만 위로 뻗은 가지들은 보시다시피 엄청나고요. 이젠 꽃까지 피웠습니다. 2층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면 달큼한 향이 확 몰려옵니다. 뽑겠다는 직원을 말린 게 잘했다 싶습니다. 마당과 벽 사이 작은 틈에서 나온 식물들은 한결같이 대단한 존재라 여겨집니다. 2층에서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찍었습니다. 이름이 뭔지 모르겠고 향은 아주 좋습니다. (이름이 박주가리랍니다. 물소리님.. 2018.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