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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24

그냥 참을 걸 그랬나 이달 초에 지인이 제주 여행하면서 귤 한 상자를 보냈다. 귤은 달고 맛있었다. 그득한 귤을 나눠 먹으려고 봉지에 담으면서 보니 더러는 썩고 얼은 것이 많았다. 날씨 탓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아래로 내려가니 깨진 것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택배사에서 많이 싣더라도 이렇게까지 눌리고 깨지며 마른 듯하게 죽죽 금이 갈까 싶어 귤 상자에 들어있는 전화번호로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여남은 개라면 모를까 상태가 온전치 못한 건 이미 대여섯 개를 버렸는데 이건 아무래도 심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과 문자를 보내놓고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하겠다더니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자신이 봐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며 죄송하다고 다시 보내주겠단다. 많이 보낼 필요 없으니 조금만 보.. 2022. 12. 25.
어우렁더우렁 5월부터 수영장이 재개장했다. 워낙 수영을 좋아해도 26개월 만이라 물에 뜰까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서로 얘기도 하는데 그전에 밤에 다녔던 터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두어 달은 그저 혼자 수영만 열심히 하면서 우리 레인 사람들과 인사만 했다. 왠지 혼자만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선뜻 "같이 커피 마실래요?" 이런 거 못한다. 말을 않고 그저 인사만 꼬박꼬박 잘한다. 설핏 웃음기는 늘 물고 다닌다. 가만있으면 차가워 보이니까. 수영장 앞 1층 탈의실 거울 앞은 언제나 복작복작하다. 꼼지락거려서인지 1층에선 거울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고 비집고 들어 갈 틈도 없다. 나보.. 2022. 12. 15.
유월에 유월이면 초록의 싱그러움이 오월보다 강하다. 내리쬐던 햇살이 조금은 강렬해지고 가려주는 나뭇잎도 넓게 퍼진다. 때맞춰 며칠간 비가 내려 가뭄에 다소 도움을 줬다. 한길 왕복 8차선 도로 옆에 얼마 전 심어둔 나무가 이름도 성도 모를 정도로 배배 말라 초록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몇 잎만 겨우 초록색이면서 쭈글하게 늘어져 있었다. 오늘쯤 이파리가 좀 넓게 펴졌으리라 믿어본다. 하필 이 시기에 나무를 죽 심어놓아 의아했다. 그곳은 다른 나무도 많아 나로선 굳이 심어야 하나 의심스러운 곳이다. 그나저나 나무가 많으면 좋기는 하다. 그 나무가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났다. 은쟁반에 옥구슬은 아니어도 딩딩 기타 소리는 나야 하는데 쇳소리가 난다. 게다가 몇마디 하면 그나마 .. 2022. 6. 17.
앞 산의 품은 늘 좋다 아파트 정문에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넌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담벼락을 타고 1분 정도 걸으면 폭이 좁은 철제 계단이 나온다. 스물두 개의 계단을 오르면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양 옆으로 닭의장풀과 질긴 억새풀과 뒤엉킨 초록들이 들쑥날쑥 나를 당긴다. 제법 비스듬히 올라야 하는 길목엔 어린 소나무도 많다. 작년에 화도읍에서 약간의 손을 봤다.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둘레길을 만들었다. 멍석을 깔고 쉼터를 일곱 개나 만들어 놨다. 어느 날, 보온병에 커피를 타고 쌀과자 세 개를 넣고 얇은 돗자리를 챙기며 책 한 권과 노트에 볼펜까지 넣은 가방을 메고 올랐다. 오전이라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데크로 만든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흠~ 시원한 바람과 슬슬 넘어가는 페이지! 좋았다. .. 2021. 6. 30.
별을 셀까? 양을 셀까? 입원실에선 환자 침상이 호텔이라면 간병 의자는 여인숙이다. 남편이 잠시 휴게실을 서성이는 동안 에라 모르겠다고 침상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세상에 이리 편할 수가! 아침이면 접었다가 저녁이면 펼치는 삼단 짜리 의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휴일 오후 병실은 서울 한복판에 있어도 외딴섬 같다. 코로나19 환자 전담 병원이라 5층에서만 지내야 하니 딱히 갈 곳도 없지만 갑갑함이 똬리를 튼다. (6층부터 7층까진 코로나19 환자가 입원 중이므로 움직이기 불안하다) 이 와중에 삼시 세 끼 따박따박 챙겨 먹으니 배가 펑퍼짐하다. 나는 복도 많지! 병실 거주 간병인이 생콩 같은 나를 보고 밥 없다 하니 쌀 있다고 밥을 지어 한 끼씩 먹기 좋게 봉지에 담아 수북하게 건네신다. 이 나이에 새삼 사람 사귀기도 귀찮고 병실에서 .. 2021. 6. 6.
민들레 그림전(박은라 화백) 병원 예약 시간보다 1시간 반 일찍 도착했다. 하릴없이 돌다 민들레를 만났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시사철 볼 적마다 초록잎 무성하고, 노란 꽃을 피우고, 홀씨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늬바람에도 돌개바람에도 따라나설 채비를 노랗고도 하얗게 꾸리고 있다. 여행지가 보도블록 사이라면 무전 여행자의 꿈을 엿보고 초록 들판이라면 잡초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비가 잦아서일까 하늘은 높고 푸르며 구름은 몽실몽실하다. (로비에서 시간 보내기) 2021.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