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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별을 셀까? 양을 셀까?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1. 6. 6.

봄날 평택에서

 

입원실에선 환자 침상이 호텔이라면 간병 의자는 여인숙이다.
남편이 잠시 휴게실을 서성이는 동안 에라 모르겠다고
침상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세상에 이리 편할 수가! 아침이면 접었다가 저녁이면 펼치는
삼단 짜리 의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휴일 오후 병실은 서울 한복판에 있어도 외딴섬 같다.
코로나19 환자 전담 병원이라 5층에서만 지내야 하니
딱히 갈 곳도 없지만 갑갑함이 똬리를 튼다. (6층부터 7층까진
코로나19 환자가 입원 중이므로 움직이기 불안하다)
이 와중에 삼시 세 끼 따박따박 챙겨 먹으니 배가 펑퍼짐하다.
나는 복도 많지! 병실 거주 간병인이 생콩 같은 나를 보고
밥 없다 하니 쌀 있다고 밥을 지어 한 끼씩 먹기 좋게 봉지에
담아 수북하게 건네신다.
이 나이에 새삼 사람 사귀기도 귀찮고 병실에서 친하게
지내면 외려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린 채 인사만 했는데 빌빌대고 어설픈 모양새가 측은지심을
유발했는지 믹스커피 20개짜리를 상자째 주시더니 원두커피도 주신다.

더하여 종이컵 기다란 한 줄까지!
오이를 잘라다 쌈장과 내밀고, 구운 김을 잘라 본죽 통에
눌러 담아 건네주었다. 누런 콩고물이 묻은 떡을 두툼하게
건네 주기도 했다.
고마워서 어제는 방울토마토를 사다 드렸으나 앞으로 어찌
보답해야 하나 커다란 숙제가 생겼다.
이렇게 살뜰한 챙김을 받으니 남편 퇴원 날이 길어질수록
고마움과 미안함이 천장을 뚫고 나갈 수도 있겠다.
1년 정도 필라테스 흉내 내느라 겨우 1kg 줄였는데
줄인 것보다 서너 배 늘어날 조짐은 차고 넘친다.
엉덩이가 무겁고 발이 질질 끌린다.

5분이나 되었을까, 남편이 링거가 주렁주렁 한 쇠봉을
잘잘 끌며 들어선다.
"히히~ 여기는 어떤 느낌인가 싶어 누워봤으~~"
이렇게 휴일 낮에도 다행히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아
무사히 밤을 맞았다.
10시가 넘으니 병실이 암흑천지다.
주로 다친 사람이 많고 심각한 환자는 없어 보인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잠든 남편 침상 아래서 나는 오늘도 쭈글쭈글 옹치고 모로 누워 시간 때우는 중이다.
잠이 오질 않으니 오래간만에 별을 셀까, 양을 셀까 갈림길에 서성이며 주저리주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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