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72 꽃심(이현숙) 2026글로벌 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꽃심 이현숙 누가 저들을 깨웠는가, 누런 흙을 헤치고 요란한 발소리로 솟아나라고. 단단한 땅을 열어젖히는 소리에 지나는 바람마저 비켜 간다. 먼지 같은 싹 하나, 천지에 흔하디흔한 풀, 없어도 그만이지만 기어이 틈을 비집고 자리 잡는다. 바람에 실려 내려앉든, 새 부리에 물려오든, 다 불시착한 자리다. 씨앗은 눅진한 흙냄새를 맡으며 찬찬히 몸을 말아 쥔다. 깊은 어둠 속에서 물의 기척을 더듬는다. 밤낮없이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 깊이 발을 뻗는다. 여린 것이 뿌리를 내리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경이로움은 줄기로 이어진다. 물길을 찾은 뿌리는 허공을 향해 키를 밀어 올린다. 흙의 숨결을 더듬으며 젖은 어둠을 끌어안고 높이를 늘린다. 뿌리는 햇살을 욕심내지 않는다. 오늘은 .. 2026. 6. 21. 제15회 독도문예대전 수상작(홀로섬, 가슴 한가운데) 홀로섬, 가슴 한가운데 (장려상) - 이현숙 - 한더위에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팔월 중순의 뙤약볕에도 기념관은 입구부터 와글와글 북새통이다. 관광버스가 늘어섰더니 단체관광을 온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 사람이 뒤섞인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국내외 사람 모두가 침묵한 채 전쟁의 흔적을 둘러본다. 공간의 조도가 낮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다에 뜬 다도해처럼 물결에 일렁이며 자리한 섬으로 보인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2층 통로의 네모난 틀이 눈길을 잡는다. 허리 높이의 유리 상자에 담긴 독도 조형물이다. 상자 앞면에 하얀 글씨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라 적혔다. 동도와 서도가 망망대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뚝 섰다. .. 2025. 10. 31. 수필 ; 홍등, 750년을 밝히다(이현숙) 2025 경북신문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은상 수상작) 홍등, 750년을 밝히다 - 이현숙 -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마을로 들어서자 풍성한 잎을 달고 선 나무가 눈에 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우람하다. 10m도 훌쩍 넘을 키에 매단 잎을 보니 푸르른 청춘이요, 사춘기 소년처럼 싱그럽다. 노거수를 먼저 눈으로 그러안으며 다가선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다가갈수록 골골이 쌓인 연륜이 그득하다. 얼마나 숱한 풍상에 시달렸을까. 노쇠한 몸을 스스로 지탱하지 못해 쇠지팡이에 의지했다. 발치부터 가지 끝까지 세월을 밀어낸 흔적이 아로새겨졌다. 나무 둥치는 하나가 아닌 둘로 가운데가 쩍 갈라지고 텅 비었다. 갈라진 한쪽 둥치 아래를 휘감은 옹이의 움푹한 눈이.. 2025. 7. 16. 나를 다독이는 시간 나를 다독이는 시간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책 속의 주인공과 겹쳐진다. 육십이 되도록 기억하지 말자고 애써 잊으려 했던 날의 기억이다. 어쩌면 팍팍한 삶을 꾸리느라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기에 자연스레 잊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책에서 주인공 여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주정뱅이 폭군 남편을 피해 떠나는 장면에서 그만 여인의 남루함과 초췌함에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당시 당구장으로 노름판으로 배회하는 무직에다 사행심에 물들어 밤이면 집을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사람과 살았다. 허영과 사행심에 사로잡혀 한 건만을 외치던 사람과의 삶은 고달팠다. 아이들은 쑥쑥 커 가는데 초조함은 나만의 몫이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돈벌이에 나서도 월세 내기 바빴다. 전기세며 가스비가 연체되어 .. 2025. 4. 13. 우리 딸 결혼했어요~ 딸이 결혼하면 서운하고 눈물 나고 잠도 안 오고 그런다고 들었다.나는 딸의 결혼으로 상견례하고 근 9개월간 서운한 마음 전혀 없이 잘 지냈다.결혼 날이 다가와도 무덤덤했다.왠지 기분 좋기만 해서 내가 비정상인가? 이런 의심도 살짝 하면서 좀 서운한 척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저 좋으니까 좋다고 웃으며 지냈다.사윗감이 우리 딸을 이뻐라 해주는 마음이 흡족한 데다 훤칠하고 직장에 잘 다니는 건실한 청년으로 보였으므로.게다가 사돈댁에서도 우리 딸을 마음에 든다 해서 감사했다.작년 12월에 상견례하고 올 9월까지 날이 많이 남아서 과연 그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엄마로서 할 일도 딱히 없었다. 두 청춘이 만나 알아서 준비를 하니 예식날 가기만 .. 2024. 11. 6. 맷돌(수필) 글재주가 없으니 배워도 그 자리다.동서문학상은 2년마다 개최한다. 우연히 알게 된 후로 올해까지 세 번째 응모했다.시는 배운 적 없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시인께서 써보라는 말에 몇 편 쓰다가써도 늘지 않아서(즉 재주가 전혀 없어서) 긁적이다 말았다.그때 두 번 맥심상을 받았다. 아주 작은 상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올해 제17회 동서문학상 공모가 있었다. 오늘 발표였다.응모작품이 총 18,629편이란다. 글 쓰는 여인들이 어마하게 많음을 실감한다.수필을 배운 지 2년이 되었는데 역시 재주나 재능, 이런 게 전혀 없다.두 편을 내라 해서 보내면서 다른 작품이 될 줄 알았는데 '맷돌'이 되었다.해서 올해 입선한 '맷돌'을 올린다. 기뻐해야 하는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죄송할 따름이다.가르침에 못 쫓아가.. 2024. 10. 22. 이전 1 2 3 4 ··· 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