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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 영화, 공연)

나를 다독이는 시간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5. 4. 13.

나를 다독이는 시간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책 속의 주인공과 겹쳐진다. 육십이 되도록 기억하지 말자고 애써 잊으려 했던 날의 기억이다. 어쩌면 팍팍한 삶을 꾸리느라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기에 자연스레 잊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책에서 주인공 여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주정뱅이 폭군 남편을 피해 떠나는 장면에서 그만 여인의 남루함과 초췌함에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당시 당구장으로 노름판으로 배회하는 무직에다 사행심에 물들어 밤이면 집을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사람과 살았다.

 

허영과 사행심에 사로잡혀 한 건만을 외치던 사람과의 삶은 고달팠다. 아이들은 쑥쑥 커 가는데 초조함은 나만의 몫이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돈벌이에 나서도 월세 내기 바빴다. 전기세며 가스비가 연체되어 끊기기 전 아슬아슬하게 연결하기를 반복했다. 몇 개월 살다 이사하고 또 이사하다가 시누이가 쌀은 대주겠다는 말에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떠돌이 생활에 내가 굶는 건 괜찮지만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시누는 동구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고 나는 서구의 투룸에 살았다. 며칠씩 집을 비우는 남자는 소식도 없고 아이들은 방학이라 함께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쌀은 떨어지고 냉장고는 텅 비었다. 어쩔 수 없이 시누네 연락했다. 택시를 타고 오면 내릴 때 택시비를 주겠다며 쌀부터 사주겠다기에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곳에서 쌀 포대를 안고 버스를 탔다.

 

오늘 난 책 속에서 나를 보았다. 그날 버스에서 삐쩍 마른 몸으로 다리 사이에 꽉 끼운 쌀 포대와 버스 손잡이의 미끈거림, 흘끔거리며 훑어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새삼 떠올랐다. 하나로 묶은 긴 생머리, 오래 입어 엉덩이가 불룩 나온 반바지와 툭툭 털어 입는 일명 냉장고 티셔츠, 뒷굽 닳은 슬리퍼를 신었다. 가방도 없이 달려가 받은 만 원과 쌀 한 포대를 받아들고 차표를 끊고 남은 잔돈을 잃어버릴까 봐 얼마나 세게 잡고 있었는지 손바닥이 얼얼했다.

 

지나간 날을 떠올리며 우울해하지 말고 글로 풀어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나도 모르게 지나간 날을 글 속에 내비치고는 표정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삶이 부끄럽거나 창피하진 않다. 그저 젊은 날의 내가 대견하고 애틋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엉엉 울었다. 울면서 스스로 다독였다. 잘 버티었고 잘 살아왔다고. 전에 없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지나간 날을 마주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마주하고 다독이며 쏟아내고 보니 후련하다. 실컷 울고 나니 내일의 나를 위해 잘했구나 싶다. 한결 가볍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동서식품 3.4월 책에 실린 글'

  글의 주제가 '감정 다스리기'였다. 나는 지난가을 언니네 빈 집으러 책과 필기구를 싸들고 들락거렸다. 언니와 형부가 출근하고 덩그러니 빈집은 넓고 쾌청한 데다 책꽂이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마음대로 뽑아서 읽고 언니가 마음 써서 준비해 둔 과일과 간식을 입맛대로 먹으며 노는 나만의 공간으로 즐겨 찾았다.

빨래 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언니는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나는 음식 만들기는 별론데 빨래를 개어 차곡차곡  정리하는 걸 즐긴다. 해서 언니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돌려놓은 빨래를 건조해서 개거가 널어놓은 빨래를 개어 옷장에 정리해 놓고 빈집 사용료를 대신했다.

  우리 집엔 퇴직한 남편과 둘인데도 혼자만의 공간이 좋아 지난겨울 심한 추위가 오기 전까지 언니네 자주 머물렀다.   어느 날, 언니네서 책을 읽다가 펑펑 울었다.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감정이 오래전으로 달려가 쌓아뒀던 울음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아무도 없어 좋았다. 실컷 울었다. 이후 동서식품 책자에서 글제가 나왔을 때 긁적여서 보냈다. 부끄러울 만한 지나온 이야기를 썼지만 후련했다. 이후로 나는 지금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