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책, 영화, 공연)

맷돌(수필)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4. 10. 22.

글재주가 없으니 배워도 그 자리다.

동서문학상은 2년마다 개최한다. 우연히 알게 된 후로 올해까지 세 번째 응모했다.

시는 배운 적 없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시인께서 써보라는 말에 몇 편 쓰다가

써도 늘지 않아서(즉 재주가 전혀 없어서)  긁적이다 말았다.

그때 두 번 맥심상을 받았다. 아주 작은 상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올해 제17회 동서문학상 공모가 있었다. 오늘 발표였다.

응모작품이 총 18,629편이란다. 글 쓰는 여인들이 어마하게 많음을 실감한다.

수필을 배운 지 2년이 되었는데 역시 재주나 재능, 이런 게 전혀 없다.

두 편을 내라 해서 보내면서 다른 작품이 될 줄 알았는데 '맷돌'이 되었다.

해서 올해 입선한 '맷돌'을 올린다. 기뻐해야 하는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가르침에 못 쫓아가는 제자는 얼마나 답답할까, 정신 차리고 이제 책이나 읽으며 

유유자적해야 하나 싶다.

 

 

 맷돌(제17회 동서문학상 수필부문 입선)

 

집 앞 공원에 툇마루 길이 산을 가로질러 길게 뻗었다. 그 끝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맷돌이 많이 생산된 유래 있는 동네 마석(摩石)이다. 어릴 적 맷돌이 놓인 방에서 살았다. 하늘이 내 삶을 수미상관으로 정했을까. 지금은 맷돌로 유명했던 동네에서 살아간다.

 

산책길 길섶 너머 커다란 돌이 보인다. 올망졸망 서 있는 나무에 살짝 가려진 둥근돌을 가만히 살핀다. 커다랗고 둥근돌이 아래위로 포개졌다. 옛집에서 돌아가던 맷돌이다. 윗돌 구멍에 흙이 쌓이고 씨앗이 날아들어 풀이 길게 자랐다. 이 정도면 맷돌인지 화분인지, 윗돌에 달린 어처구니가 돌의 족보를 말해준다.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는 콩밭에서 나왔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잎들이 무성했다. 어머니의 일상은 콩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틈이 나면 콩밭에 나가 잡초를 뽑고 북을 돋았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밭이랑에는 콩들이 몸을 조금씩 불렸다. 손이 부르트도록 호미질한 수고는 고스란히 수확으로 돌아왔다.

 

가을이면 콩 대궁 묶음이 마당 가득 부려졌다. 도리깨로 내리치면 타닥거리며 콩이 멍석 위로 쏟아졌다. 이리저리 튕겨 나간 콩이 벽을 때렸다. 신발 속이나 아궁이 속으로 굴러들었다. 콩은 또랑또랑하고 탱글탱글해서 어디로 굴러가도 깨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흩어진 콩을 주울 때면 흙이 묻어도 괜찮으니까 보이는 대로 주우라고 시켰다.

 

“이거 봐라, 얼마나 야물딱지나, 사람도 요래 콩처럼 야물어야 된다. 알겠제? 야물어야 어딜 가도 잘 사는 기라.”

 

살바람 부는 어느 날, 어머니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이를 악물고 맷돌을 붙안아 옮겼다. 윗돌을 문지방에 걸쳐놓고 보자기를 깔고 돌을 밀어 방 안으로 살살 잡아당겼다. 다시 아랫돌을 그러안아 방안으로 디밀었다. 맷돌은 큰방 윗목에 자리를 잡았다. 맷돌은 병약해 아랫목을 지키는 아버지와 몸집이 비슷했다.

 

농한기엔 방안 가득 쟁여둔 콩 자루를 열었다. 뒷마당의 커다란 대야엔 누런 콩이 몸을 불렸다. 어머니는 맷돌 앞에 앉을 때면 의식을 치르듯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르고 양팔을 걷고 허리를 쭉 펴고 앉았다. 맷돌 앞에 앉을 때면 눈을 매섭게 반짝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어처구니를 잡고 돌릴 때면 쌔근거리는 들숨과 날숨이 쓱쓱 돌아가는 맷돌 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윗돌 귀퉁이에 세워진 어처구니가 쑥 빠진 날이었다. 천을 끼워 넣어도 헐렁거리며 자꾸만 빠졌다. 어처구니에 적당한 나무를 찾으러 아버지가 나섰다. 천식을 앓는 아버지는 얼마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로도 어처구니가 빠지면 천을 덧대고 천이 찢어지면 나무를 잘라 끼워가며 돌렸다. 흔들리는 어처구니로 겨우내 맷돌은 쉬지 않고 돌았다.

 

물과 함께 갈린 콩은 거품이 되어 부글거렸다. 자루에 퍼담아 꾹꾹 눌러 비지만 남기고 콩물을 받았다. 콩물을 가마솥에 부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휘저으며 끓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콩물의 거품을 건져가며 물을 조금씩 붓다가 간수를 넣었다. 콩물이 몽글몽글 뒤엉키면 네모난 틀에 천을 깔고 퍼담아 위에다 묵직한 돌을 올려놓았다.

 

굳어진 두부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잘라 통에 담갔다. 그러면 동네를 오가는 사람이 두부를 사 갔다. 반은 외상이고 반은 덤이었다. 외상값은 흐지부지 사라졌고 어머니는 처음부터 받을 마음이 없었다. 두부는 이 집에서는 부침이 되고 저 집에서는 찌개가 되어 밥상을 살찌웠다. 어머니는 삶의 의지는 콩처럼 야물고 단단했지만 나눔은 두부처럼 말랑했다.

 

어머니는 길손을 차별하지 않았다. 건넛마을 아낙이 빈속으로 건너오면 눈치껏 밥을 내놓았고 윗마을 어른이 굽은 허리로 내려오면 붙잡아 앉혔다. 간간이 찾아오는 말문 닫힌 아주머니를 손짓으로 불러 앉혀 어머니 몫을 대신 먹여 보냈다. 아침이면 가마솥 아궁이에 앉아 있던 먼 친척 조카들의 손을 녹이며 다독였다. 식솔이 모여 오붓하게 밥 먹는 날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두부 만드는 날은 집 앞을 지나가는 누구라도 두부를 먹을 수 있었다. 보부상도 걸인도, 아이도 어른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눈에 띄는 사람이면 불렀다. 길갓집은 늘 사람이 기웃거린다지만, 어머니는 항상 배부르다거나 입맛이 없다며 멀찌감치 앉았다. 눈살을 찌푸리는 가족의 말도 귓등으로 넘기고 그저 남의 밥그릇만 챙겼다. 식솔이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데, 바깥사람에게 다 퍼주다니 어린 내가 보기에는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맷돌은 둥글고 묵직한 돌 두 개가 포개진다. 아랫돌은 윗돌보다 두툼하고 듬직하며 굳건하다. 윗돌은 아랫돌보다 두께가 조금 얇다. 아버지가 든든한 아랫돌이어야 하는데, 병약한 아버지는 아랫돌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어머니는 아래위 역할을 다 맡았다. 방바닥에 붙인 어머니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아랫돌이고 어처구니를 잡은 마디 굵은 손이 윗돌이었다. 존재감이 듬직한 어머니의 바지런한 몸짓이 있어 집안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갔다.

 

지금도 그날의 필름이 돌아간다. 어머니의 손에 잡혀 맴도는 어처구니와 가쁜 숨결이 내뱉는 단내, 곁에 앉아 칭얼대는 피붙이, 거품이 보글보글 일며 흘러내리는 콩물, 국자로 떠 넣어도 좀처럼 줄지 않는 불어 터진 콩, 하얀 머릿수건과 옥양목 앞치마, 고생시켜 미안한지 쑥스럽게 던져보는 아버지의 잔소리, 그리고 드르륵드르륵 돌아가는 맷돌 소리까지.

 

어처구니를 돌리면 어머니는 뭐든 갈지 못하는 게 없었다. 빙빙 돌아가는 맷돌 구멍에 세상 시를 붓고 터질 것 같은 울화도 넣고, 넘칠 것 같은 설움도 넣고, 단단한 심지 하나 심으며 어처구니를 돌렸다. 어처구니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까지 하얗게 갈아졌다. 그렇게 어머니는 맷돌을 돌리며 모든 것을 하얗고 말랑한 결정체로 만들었다.  

 

새로운 결정체, 두부는 부드럽고 말랑해 누구의 몸에 들어가도 저항하지 않는다. 속 편하게 흡수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두부를 먹으면 마음마저 순수해진다. 모든 것을 순수로 바꿔버리는 어머니의 맷돌질이 그래서 더 새하얗게 빛이 난다. 하물며 그 말랑한 마음이야 더 말할 나위 있으랴.

 

어처구니를 잃은 채 화분으로 전업한 맷돌, 그 위에 핀 쑥부쟁이의 미소가 마치 어머니의 마음처럼 하얗다.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에도 순두부 같은 구름이 몽글몽글 피었다. 마음이 하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