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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 영화, 공연)

수필; 칠성별, 지상에 빛나다(이현숙)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3. 11. 24.

    칠성별, 지상에 빛나다 (이현숙)

      -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형산강이 유유히 흐른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지가 비옥해 작물이 풍성하다. 철 따라 부족을 이끌고 먹잇감을 찾아다니던 조상이 문명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그래서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일곱 고인돌이 있어 칠성마을이라 불리는 기계면 성계리다. 초입에 들어서자 빛바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동굴 속에 아이를 안은 여인과 매머드를 잡는 원시인의 그림이다. 골목을 따라 들어서니 포항 행복마을이라 쓰인 반듯한 돌 위에 큼직한 별이 떴다. 별 속에 든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곗바늘을 얼마나 거꾸로 돌려야 저 시대로 돌아갈까, 조용히 눈을 감는다.

 

  벽화 속 여인이 사내를 배웅한다. 긴 장대와 뾰족한 돌을 옆구리에 낀 사내들이 사냥을 나선다. 여인은 동굴 속으로 돌아와 돌화로에 나뭇가지 몇 개를 집어넣고 꺼져가는 불씨를 후후 입바람으로 일으킨다. 때마침 아이가 깨어 칭얼댄다. 여인은 아이를 안아 젖을 먹이고 어르며 동굴 안을 맴돈다. 이번에는 멧돼지 몇 마리 잡아 오려나 동굴 밖을 내다보며 아이를 토닥토닥 재운다.

 

  새로 세운 대문 옆에 매곡댁 고인돌이라 쓰였다. 까치발을 하고 눈으로 더듬어도 고인돌은 보이지 않는다. 담벼락을 따라 전봇대 앞에 서서 풀쩍 뛰어보니 새집 오른쪽 모퉁이에 거뭇한 형체가 보인다. 고인돌이긴 한데, 형체가 가려져 있어 들여다보지 못해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주산댁 고인돌은 벽화로 본 위치가 분명한데 팻말도 없고 주인도 없다. 빈집을 기웃거리다 허공에다 인사하고 여남은 걸음 들어서니 드러누운 고인돌이 보인다. 집 뒤에 숨은 듯 나지막한 고인돌 앞에 제법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기대섰다. 감나무와 고인돌이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지 이젠 하나인 듯하다. 밖에선 볼 수 없는 고인돌을 보니 자태가 얌전하고 자그마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어느 처녀의 가슴앓이가 묻힌 곳은 아닌지 애처롭다.

 

  양동댁 고인돌은 장독대 옆으로 밭둑과 경계가 된 고인돌이 두꺼비같이 앉았다. 밭둑에 핀 제비꽃을 뜯어다 꽃밥을 하고 풀잎 반찬을 사금파리 조각에 담는다. 고인돌 위에다 소꿉 살림을 차린 소녀가 봄볕에 시린 눈을 뜬다. 소년은 고인돌 위에서 풀쩍 뛰어내리며 흙바람을 일으킨다. 두 팔 벌려 안으면 아름 남짓하고 뛰어내리기 적당한 높이다. 그 앞으로 원시 소년과 소녀가 맨발에 벌거벗은 몸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봉계댁 고인돌은 골목에서도 단번에 눈에 띈다. 담 모퉁이에 떡하니 걸터앉은 고인돌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크다. 치우고 싶어도 치울 수 없었기에 이 집 아이들은 운명처럼 바위를 자연스럽게 끌어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바위의 성정을 배운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는 고인돌만큼 단단한 의지를 가슴에 품고 나가지 않았을까.

 

  진품댁 고인돌을 찾아 나선다. 골목을 들어서니 흙과 돌이 섞인 낮은 담벼락에 절로 손이 간다. 담의 윗부분을 반달 모양 기와로 얹어 마을을 상징하는 별과 흙담 위의 달이 어우러져 하늘을 그려놓은 듯하다. 고인돌 위로 이끼가 버짐처럼 희끗희끗 피었다. 켜켜이 갈라진 무늬가 작은 바위가 여럿 모이고 쌓인 듯 둥글둥글하다. 비바람에 풍화되어 모양새는 낡고 볼품은 없어도 그 위용은 뒷마당을 다 차지할 만큼 우람하다.

 

  최임식댁 고인돌은 진품댁과 등을 맞대고 있다. 골목을 돌자 대문 옆에 담으로 서서 반은 길에 반은 마당에 섰다. 경주 왕릉을 보면 왕의 권세를 알 수 있듯이 고인돌의 크기를 보며 선사시대의 권세를 짐작해 본다. 아름으로 서너 아름은 족히 되겠다. 숲을 호령하던 족장의 주검인지 2m가 훌쩍 넘는다. 게다가 화강암이라 그 질이 단단하고 힘차다. 오래도록 위엄을 잃지 않고 선 고인돌을 보니, 이 집 자손 중에 큰 인물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동산댁 고인돌을 향해 걷다가 우뚝 멈췄다. 대문 기둥 옆이 바로 커다란 고인돌이다. 바위를 굴리다 만 듯 비스듬히 누웠다. 한때 벽이었던 고인돌이 휑한 집을 지키며 낯선 이를 뜯어본다. 서로 이어지지 않는 무덤과 대문이 이어지다니, 이 아이러니가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게다가 갑옷에 투구를 쓰고 커다란 방패를 든 모습이다. 대문 옆에서 사천왕처럼 버티고 섰으니 이 집에 들어오려던 악귀도 화들짝 놀라 달아났지 싶다.

 

  골목을 벗어나 칠성재를 오른다. 칠성재 다섯 기의 고인돌 중 맨 위의 고인돌은 집채만 하다. 콧대 높은 세도가는 죽어서도 높은 곳에서 권세를 누렸나 보다. 사방에다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다 5m 높이에 무게가 2톤쯤 되는 윗돌을 세웠다. 어른 여덟 명이 팔을 뻗어야만 닿을 정도로 넓은 윗돌을 눕히지 않고 세워둔 것이라니,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단다. 그 모습이 마치 일곱 기의 마을 고인돌을 굽어보며 칠성신을 떠받들고 있는 것만 같다.

 

  일곱 기의 고인돌 자리가 북두칠성 모양이다. 우리 조상은 칠성별이 영혼의 고향이라고 믿었다. 우리네 어머니는 별이 가장 빛나는 새벽녘 장독대 앞에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빌었다. 병든 아버지를 낫게 하고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살던 어머니는 지상의 생을 다하고 칠성판에 누워 고향별로 돌아갔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어느 날 불쑥 나타나지 않았다. 나 역시 나의 어머니가 낳았고 나의 어머니는 또 그 어머니가 낳았다. 내가 살다 떠나면 내 아이가 아이를 낳고 다시 그 아이가 아이를 낳아 내일이 된다. 이렇듯 역사는 어제의 바탕 위에 오늘이 살고 오늘의 기반 위에 내일이 산다. 오늘을 사는 내가 삼천 년 전의 역사를 찾아 떠난 까닭도 그러하다.

 

  마을을 나서다가 다시 한번 돌아본다. 삼천 년 전의 무덤을 산 사람이 끌어안고 사는 모습을 보니, 일곱 집 주인은 돌무덤에 묻힌 사람이 환생하지 않았을까. 천손신화를 가진 우리는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었으니까, 돌고 도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니, 내 상상이 엉뚱하지는 않지 싶다.

 

  북향 마을은 자연스럽게 칠성별과 눈을 맞추게 된다. 성계리가 그렇다.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지상의 별자리로 반짝이고, 밤이면 하루를 잘 살았다고, 지상의 자식들이 잘 자라고, 밤하늘 칠성별이 내려다보며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