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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냥 참을 걸 그랬나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2. 12. 25.

이달 초에 지인이 제주 여행하면서 귤 한 상자를 보냈다.

귤은 달고 맛있었다. 그득한 귤을 나눠 먹으려고 봉지에 담으면서 보니 더러는 썩고 얼은 것이 많았다. 날씨 탓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아래로 내려가니 깨진 것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택배사에서 많이 싣더라도 이렇게까지 눌리고 깨지며 마른 듯하게 죽죽 금이 갈까 싶어 귤 상자에 들어있는 전화번호로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여남은 개라면 모를까 상태가 온전치 못한 건 이미 대여섯 개를 버렸는데 이건 아무래도 심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과 문자를 보내놓고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하겠다더니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자신이 봐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며 죄송하다고 다시 보내주겠단다. 많이 보낼 필요 없으니 조금만 보내달라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대신 깨진 귤 상자는 반품하라고 해서 현관 앞에 뒀다.

일주일이 지나도 반품으로 써서 내놓은 귤은 택배사에서 가져가지 않아 영 찜찜했다. 그새 새 귤은 집으로 배달되었다. 반품하지 않아 내놓은 지 3일째부터 문자를 간간이 했는데 소식이 없어 8일째 되어 전화를 했다. 귤상자가 그대로 있으니 택배사 불러서 직접 보내드릴까요 하니 그제사 하는 말이 그냥 좀 버려주시면 안 될까요? 란다. 그럼 진즉에 말하지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남편은 신경 쓰인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성격상 찜찜한 걸 싫어하니 그럴 수밖에... 며칠 동안 그렇게 문 앞에 있어 나 또한 찜찜하고 신경 쓰였다. 다시 상자를 열고 보니 곰팡이에 설핏 얼어 당장 버려야 할 판이다. 

 

지난주에는  11번가를 통해 파프리카 2kg을 주문했다. 퇴사 후부터 아침은 양배추와 파프리카나 제철에 나오는  채소 위주로 샐러드를 먹는다. 파프리카는 색이 고와  채소와 잘 어우러져 보기도 좋고 아삭한 식감도 좋다. 해서 파프리카를 좋아한다. 마트에서 사면 가격이 만만치 않아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여 싼 가격대를 찾았다. 겨울이라 보관하기도 좋아 좀 많다 싶었지만 주문했다.

4일 만에 파프리카가 왔는데 세상에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다 얼었다. 전날 택배사에서 문자가 왔다. '몸이 좋지 않아 내일 갖다 드릴게요'라고. 그러세요 했는데 다음 날 받은 택배는 꽁꽁 얼어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파프리파 업체에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별난 건 아닌가? 했다. 귤과 파프리카...  전에는 반품도 않고 대충 맞춰가며 더러 손해도 보고 말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오만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냥 먹을까도 싶고 갈팡질팡했다. 근데 12월에 두 번이나 이렇게 하자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파프리카 업체에서 싹싹하게 말한다. 날이 추워 얼었나 보다고 반품신청하라고. 그리고 파프리카는 그냥 처리해주시면 좋겠단다. 얼었어도 구우면 먹을 만하다고 그렇게 먹으란다. 미안해서 다음에 꼭 다시 이용하겠다고 했더니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까지 건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택배 갖다 주는 사람이 몸이 좋지 않다더니 하루를 밖에서 보낸 파프리카가 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동네는 연일 영하 15도를 넘나들고 있었으니 그랬을 것만 같다. 파프리카 업체에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 먹기는 그러니까 반품 신청 않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반환해 주겠단다. 몽땅 얼었으니 업체에서 죄송하단다. 그 상자 안에 비닐로 한 번만 쌌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암튼 이래저래 빚진 기분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 보니 파프리카는 들쑥날쑥 푹푹 손톱으로 주물러 놓은 듯 쪼글쪼글 마르고 투명하게 변했다. 애써 키운 사람도 떠오르고 판매자도 떠오른다. 그냥 참을 걸 그랬나......  

다시 온 귤
택배 오는 동안 이렇게까지 터지는 게 맞는가 싶다. 정말 모르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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