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수영장이 재개장했다. 워낙 수영을 좋아해도 26개월 만이라 물에 뜰까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서로 얘기도 하는데 그전에 밤에 다녔던 터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두어 달은 그저 혼자 수영만 열심히 하면서 우리 레인 사람들과 인사만 했다. 왠지 혼자만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선뜻
"같이 커피 마실래요?"
이런 거 못한다.
말을 않고 그저 인사만 꼬박꼬박 잘한다. 설핏 웃음기는 늘 물고 다닌다. 가만있으면 차가워 보이니까.
수영장 앞 1층 탈의실 거울 앞은 언제나 복작복작하다. 꼼지락거려서인지 1층에선 거울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고 비집고 들어 갈 틈도 없다. 나보다 빠릿빠릿한 사람들 뒤태를 보며 대충 보따리 챙겨 2층으로 올라가 사물함에 세면도구를 넣고 머리를 말린다. 2층 사물함 옆에는 선풍기 한 대 높직하게 걸려있고 아래로 드라이어 하나와 큰 거울 하나가 있다.
그곳에서 거푸 만나게 된 다섯 살 많은 언니가 어느 날, 커피 마시고 가라며 휴게실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 잔 사주었다. 커피를 들고 따라가니 이미 두 명의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언니 모두 수영 초보라 얼핏 스쳤어도 초면이나 매한가지다. 인사를 하고 앉았다.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10시 수영이라 50분에 끝나고 씻고 나오면 대략 11시 15분에서 20분이 된다. 12시 즈음 헤어진다. 얼마 전에는 네 살 많은 언니가 같은 레인의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이젠 다섯 명이다.
나는 회사 다니던 오래전부터 가방에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함께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언니들도 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이후로 언니들 모두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새로 온 여인에게도 가지고 오라 했다. 문화센터에 달린 카페테리아에선 텀블러에 커피를 받으면 500원을 빼준다. 여럿이라 한 잔 값은 떨어진다. 돈도 아끼고 일회용 안 써서 좋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새로 온 여인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굳이 밥을 사겠다며 차를 몰고 오겠단다. 좋은 곳으로 모시겠다며 날을 잡으랬다. 해서 이달 초 북한강변의 어느 돌솥밥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그때가 그 여인과 세 번째 만난 날이라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래도 일단 얻어먹고 다음에 돌아가며 사면되지 했다.
한데 음식점에서 직원이 물통과 종이컵을 들고 주문받으러 왔을 때 하나같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텀블러를 꺼내고 한 언니는 컵까지 꺼냈다.
"언니들 모두에게 박수!"
하고는 엄지를 추켜세웠다. 우리라도 환경 생각해야 한다며 앞장선 현숙이가 제일이란다.
별거 아니어도 별것처럼,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이 요즘이다. 우린 함께 어우러져 매주 화요일은 산행하기로 약속했다. 이미 백봉산, 호명산, 송라산, 천마산을 다녀왔고 13일 화요일은 천마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곳에서도 당연히 종이컵은 없다. 새로 온 여인은 이번에 처음 함께 걸었다.
또 변한 것은 수영장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는 게 아니라 각자 가지고 온 커피로 텀블러에 타서 휴게실에서 마신다. 그곳은 회원을 위한 공간이라 눈치 볼 필요가 없어 굳이 커피를 사지 않아도 되는 넓은 공간이다. 처음에는 왠지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잦아지다 보니 이젠 아무렇지 않게 가서 커피를 마시고 더러 간식을 갖고 와 나눠 먹는다. 다른 테이블에도 텀블러가 눈에 띈다. 그들도 일회용은 최대한 줄이고 500원을 절약하거나 우리처럼 갖고 온 커피로 타 먹기도 한다.
혼자 운동하고 집으로 곧장 왔다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을 거다. 이런 시간을 갖게 되고 어우렁더우렁 지내며 나날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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