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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행인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8. 8. 21.

  화요일 저녁 7시 20분 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켜 현관을 나섰다. 문화센터 수영 강습이 있어 억지로 나서는 중이었다.

  빨리 걷고 싶은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빨리 걸어지지도 않는다. 더위는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날 구속하고 놔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파트 상가에 다다르자 욕설이 들렸다. 청년 서넛과 중년 여인 둘, 여자 중학생 둘이 어정쩡하게 모여있었다.

 

  나는 행인 1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멀찌감치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 곧이어 치킨집에서 구경꾼이 몇 나왔다. 다시 행인 2와 3이 나타났다. 가던 길 멈추고 뒷걸음 몇 걸음까지 걸어가 대놓고 구경한 것은 중년 여인 중 한 사람이 상가 2층 미용실 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동이나 강남에 어울릴 만한 세련된 여인이다. 누구라도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외모에 분위기는 이지적이다. 이사 와서 7년 전에 머리 자르러 한번 간 적이 있다. 단골이 되지 않았지만, 오가며 스치기도 하여 알고 있다.

 

  싸움이 일어난 곳은 치킨집 옆 새로 생긴 돈가스집 앞이었는데 미용실 원장이 기세등등하게 갈수록 강도 높여 욕을 하며 손까지 번쩍 올렸다 내렸다 했다. 올라갔다 내려온 손은 원장의 늘씬한 허리를 착 감싸면서 얹혔다. 당장이라도 한 대 후려칠 듯하면서 집게손가락까지 하늘로 쭉쭉 뻗는 모습이 분을 삭이기 힘든 모양이다.

   "쪼맨한 것들이 너네 어느 학교 학생이야? 어린 것들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2층 미용실에만 있어서 어느 학교 교복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았나 보다.

 경극에 나올 법한 뽀얀 분을 바른 얼굴에 장밋빛 붉은 입술을 칠한 여학생이 까만 머리를 원장 코 앞에 들이대며

   "아줌마가 뭔데요! 내 맘이에요!" 를 외친다.

   "여태껏 십수 년을 장사해도 너 같은 애들 못 봤어, 상가 물 흐리지 말고 당장 꺼져" 하고 원장이 억세게 쏘아붙인다.

   "아줌마가 왜 그러는데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아줌마나 잘하세요." 또 학생이 대든다.

   웅성거리며 말리는 시늉을 하지만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다.

   이즈음에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오고 나는 주춤 화단 가로 올라섰다. 수영장은 8시부터 시작이라 곧 가야 하지만, 원인이 궁금했다. 그때까지 있었어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저 원장은 왜 저리 화가 났고 여학생은 엄마보다 나이 많을 듯한 원장에게 대들고 섰나 싶었다. 말리려면 어느 순간 적절하게 나서야 할지 마음만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경찰차가 오자 학생이 울음을 터뜨리며 폭행죄가 어쩌고 한다. 좀 전 경찰차가 오는 소리와 동시에 원장의 입에서

   "귀싸대기를 확~" 하더니 정말 날렸나 보다. 마침 경찰차를 보느라 그 장면은 보질 못했다.

 팬티가 보일락말락 한 치마 위로 눈물 콧물이 묻고 여학생 손은 위아래로 바쁘다.

 행인 1인 나는 경찰이 와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도대체 원인이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웅성거리는 동안 주변에 구경꾼이 배로 늘었다. 미용실 원장이 목청을 높였다.

  "아니! 이런 조그만 것들이 싹수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말이 돼요? 싹수없이 말이야!"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는다.

  고발하려면 하라고 이런 꼴은 못 본다며 기세가 좀 전보다 더 높아졌다. 한 대를 때렸으니 중학교 옆에 위치한 지구대로 일단 가야겠지. 어떤 어른이 참된 어른이고 어떤 학생이 제대로 된 학생일까? 나는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싸움의 원인을 알게 된 나는 궁금증이 풀어지자 수영장을 향해 걸었다. 불구경, 싸움 구경, 모든 구경의 중심은 소용돌이다. 휘말리지 않으려면 늘 갓길을 걸으며 행인1로 살아야 한다. 어쩌면 행인으로 살아가는 내내 비겁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걷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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