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림을 업어왔다.
요즘 자칭 비너스라 우기며 살다 보니 위의 명화 속 비너스가 나랑 비슷한 느낌이다.
넉넉한 뱃살이며 두툼한 허벅지까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바다에서 떠밀려온 조가비 속에서 탄생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무표정한 모습이다.
셀카를 찍으면 항상 무표정하다고 놀려대는 아들딸의 말처럼 명화 속의 비너스도 무표정하다.
수영장에 가면 여인들은 모두 살과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그중 날씬한 사람들이 더 심하게 살 빼려고 나서고 살쪘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나 같은 경우도 살 빼야 한다면 더러 구시렁대거나 그만하라는 소리도 듣는다.
왼발 앞쪽이 아파 산에 다니지 못해 수영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오래 다니다 보니 친하게 지내게 된 언니들과 동생들이 생겨 동네에서 아는 사람도 생겼다.
여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자주 다이어트에 관해 얘기가 오가는데,
일자형 몸매부터 중앙집중식 또는 상체 비만이나 하체 비만도 있다.
내가 보기엔 대체로 수영장 다니는 사람들이 날씬한 편이다.
어느 날 수영 시작 전 너덧 명 모인 한증막에서 서로 살이 쪘네! 빠졌네! 하던 중 동생 한 명이
"언니는 비너스야" 했다.
옆에 앉았던 사람들까지 합세해서 비너스 같단다. 각자의 머릿속 비너스가 궁금했지만, 대뜸
"날 잡으라 한턱낼게!"
했더니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말은 그래도 모두 낮에 근무하고 밤에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함께 차 한 잔 마시기도 쉽지 않다.
이후 집에 와서 은근슬쩍 뽐내며 자랑삼아 얘기했다.
"수영장 동생이 나보고 비너스래"
가족들의 뜨악한 표정에도 앞으로 비너스라 부르라며 세뇌했더니
어느 날 남편이 말하기를
"불량품 비너스" 한다.
물음표를 달고 앞에 '불량품'은 뭐냐고 물었다.
뭐 비너스가 만날 아프고 시원찮으니 불량품이라는 거다.
요즘도 수영하다 손가락이 접질려서 물리치료 다니지만, 평소 건강 체질이 아니라 골골대니 할 말이 없다.
비너스라는 말을 꺼냈다가 '불량품 비너스'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름다운 거짓말이 때때로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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