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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독이는 시간 나를 다독이는 시간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책 속의 주인공과 겹쳐진다. 육십이 되도록 기억하지 말자고 애써 잊으려 했던 날의 기억이다. 어쩌면 팍팍한 삶을 꾸리느라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기에 자연스레 잊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책에서 주인공 여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주정뱅이 폭군 남편을 피해 떠나는 장면에서 그만 여인의 남루함과 초췌함에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당시 당구장으로 노름판으로 배회하는 무직에다 사행심에 물들어 밤이면 집을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사람과 살았다. 허영과 사행심에 사로잡혀 한 건만을 외치던 사람과의 삶은 고달팠다. 아이들은 쑥쑥 커 가는데 초조함은 나만의 몫이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돈벌이에 나서도 월세 내기 바빴다. 전기세며 가스비가 연체되어 .. 2025. 4. 13.
우리 딸 결혼했어요~ 딸이 결혼하면 서운하고 눈물 나고 잠도 안 오고 그런다고 들었다.나는 딸의 결혼으로 상견례하고 근 9개월간 서운한 마음 전혀 없이 잘 지냈다.결혼 날이 다가와도 무덤덤했다.왠지 기분 좋기만 해서 내가 비정상인가? 이런 의심도 살짝 하면서 좀 서운한 척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저 좋으니까 좋다고 웃으며 지냈다.사윗감이 우리 딸을 이뻐라 해주는 마음이 흡족한 데다 훤칠하고 직장에 잘 다니는 건실한 청년으로 보였으므로.게다가 사돈댁에서도 우리 딸을 마음에 든다 해서 감사했다.작년 12월에 상견례하고 올 9월까지 날이 많이 남아서 과연 그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엄마로서 할 일도 딱히 없었다. 두 청춘이 만나 알아서 준비를 하니 예식날 가기만 .. 2024. 11. 6.
맷돌(수필) 글재주가 없으니 배워도 그 자리다.동서문학상은 2년마다 개최한다. 우연히 알게 된 후로 올해까지 세 번째 응모했다.시는 배운 적 없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시인께서 써보라는 말에 몇 편 쓰다가써도 늘지 않아서(즉 재주가 전혀 없어서)  긁적이다 말았다.그때 두 번 맥심상을 받았다. 아주 작은 상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올해 제17회 동서문학상 공모가 있었다. 오늘 발표였다.응모작품이 총 18,629편이란다. 글 쓰는 여인들이 어마하게 많음을 실감한다.수필을 배운 지 2년이 되었는데 역시 재주나 재능, 이런 게 전혀 없다.두 편을 내라 해서 보내면서 다른 작품이 될 줄 알았는데 '맷돌'이 되었다.해서 올해 입선한 '맷돌'을 올린다. 기뻐해야 하는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죄송할 따름이다.가르침에 못 쫓아가.. 2024. 10. 22.
고령 상무사 기념관(수필) 고령 상무사 기념관(이현숙) -경북신문 '2024 경북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입선-  봄이면 괜스레 몸이 근질거린다. 알 수 없는 설렘은 해마다 찾아온다. 누군가 뒤에서 자꾸만 떠미는 듯하고 밖에서 끌어내는 듯하다. 이럴 땐 집을 나서면 오히려 차분해진다. 선조들의 흔적을 좇아 고령으로 갔다. 봄날의 푸르름 속에 빠져드니 싱그럽고 해사하다.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니 대가야 박물관과 역사관, 우륵박물관, 개실마을 등 가보고 싶은 곳이 죽 나온다. 유명하진 않아도 흥미로운 곳은 없나 싶어 블로그를 뒤적거렸다. 조선 시대 보부상에 관한 글과 사진이 나왔다. 여유로운 공간에 호젓하게 선 기와집이다. 수십 년 동안 경리 업무를 봤던 터라 우리나라 상업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솔깃해 첫 목적지를 고령 상무사 기념.. 2024. 10. 7.
칠성별, 지상에 빛나다 (수상 소감) 친정에 갈 때면 늘 설렜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포근한 안식이 되고 세상살이 고달픔도 잊게 되어 자주 가려고 애를 썼다.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설렘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자주 가려던 발길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지난 2월 어머니 기일에 영천댐 초입의 공원묘지에 들렀다. 부모님과 선조들의 흔적은 작은 비석에 몇 줄 글씨로 새겨졌다.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 자식에서 자식에게로 이어지리라. 그날 기계면 성계리로 갔다. 겨울인데도 따사로웠고 바람마저 잠잠했다. 고요함 속에서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며 마을 속에 잠든 고인돌을 찾았다. 성계리 마을 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모여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갑고도 서러웠다. 쭈뼛거리며 내밀었던 사탕 봉지를 받으시곤 커피를 타서 주시던 쪼글쪼글한 .. 2023. 12. 8.
수필; 칠성별, 지상에 빛나다(이현숙) 칠성별, 지상에 빛나다 (이현숙) -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형산강이 유유히 흐른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지가 비옥해 작물이 풍성하다. 철 따라 부족을 이끌고 먹잇감을 찾아다니던 조상이 문명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그래서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일곱 고인돌이 있어 칠성마을이라 불리는 기계면 성계리다. 초입에 들어서자 빛바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동굴 속에 아이를 안은 여인과 매머드를 잡는 원시인의 그림이다. 골목을 따라 들어서니 포항 행복마을이라 쓰인 반듯한 돌 위에 큼직한 별이 떴다. 별 속에 든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곗바늘을 얼마나 거꾸로 돌려야 저 시대로 돌아갈까, 조용히 눈을 감는다. 벽화 속 여인이 사내를 배웅한다. 긴 장대와 뾰족한 돌을 .. 2023.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