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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봄을 보다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0. 3. 31.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에 혹이 제법 크다고 진료를 꼭 받아보라고 했다.

아산병원에 예약하여 진료를 받고 검사일을 지정하여 다시 검사했다. 검사일에 가느다란 바늘로

초음파로 보면서 조직을 떼어 내고 핵 영상관에서 목 사진을 찍기로 했다. 미리 수납을 마치고

조직을 떼기 위해 초음파실로 갔다. 내 차례가 되어 검사받는 중에 유심히 들여다보던 선생님이

 다른 방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그 선생님이 다시 초음파를 보고나서 몇 마디를 나누고는

시퍼런 보자기를 덮어 씌웠다. 조직을 떼어내겠다며 마취를 하겠단다.

5% 정도만 마취 후 조직을 떼어낸다는데 백 명 중 다섯 명에 들었다는 의미다.

마취 주사가 목에 들어가는 데 따끔하다더니 따아아아끔했다.

이후 좀 굵은 바늘로 한 번 푹 찔러 빼더니 다시 바늘 하나를 더 푹 찔렀다.

마취했는데 아픈 건 또 뭐람!

이리하여 검사 결과 기다리는 동안 온 가족이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어제 남편은 월차를 내고 딸은 반차를 내어 내분비과 앞에 셋이 나란히 앉았다.

다른 사람은 거의 혼자 앉아있었다. 부끄러워서 혼자 한쪽으로 갔더니 둘이 줄줄 따라온다.

차례가 되어 선생님 앞에 들어갈 때 둘이 줄래 줄래 와서 좁은 진료실을 꽉 채운다.

선생님의 첫 말씀이

"암은 아닌데요"였다. 세 명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세포가 좀 이상하게 생겨서 조직 검사를 했는데 괜찮고

만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고 했다. 요오드를 적게 먹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란다.

이어 영양상담을 받으라고 하여 딸에게 네가 가르쳐주면 되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내 말을 안 들으니 다른 선생님께 들으라며 기어이 상담실로 보냈다.

상담실 대기 중에 얼마나 다행이냐며 눈가 주름을 잡으며 나란히 앉았는데

옆에서 속삭인다. "이거 엄마 딸이 만든 거야"

대기실 앞 스크린에는 딸이 만든 자료들이 화면을 바꿔가며 나왔다.

열량을 높여야 하는 음식과 환자들이 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까지

적당한 시차를 두고 화면이 바뀐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미하나마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고 직장 생활하니 감사한 마음이다.

영양 상담 선생님 말씀이 준경 샘이 엄마 말하면서 울었다고 다행이란다.

눈물이 흔한 딸이 더 강해지길 바라며, 18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안심 스테이크로

이른 저녁을 먹고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감사한 날이다.


이리하여 새삼스레 봄을 본다.


우리 아파트에도 꽃이 피었다. 가장 먼저 핀 청벚꽃

지난주 큰 시누네 가서 얻어 온 다육이, 꽃이 아니어도 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 우쭐우쭐 제비꽃 찾아다닌 날, 텃밭 아래 옹기종기^^

나무 아래도 여기저기~ 나 대신 세상 구경 열심히 하는 중!

나는 민들레가 한철 피는 줄 알았다. 겨울이 아니면 언제든 피어 있는 민들레를 만날 수 있음이 신기하지만 인정! 

활짝 핀 군자란을 눈으로만 담기엔 아쉬워서 다시 올려본다.

다른 집 화분보다 수가 적지만 나는 대만족이다. 여유로운 게 좋아서~

부엌에서 내다보면 마주하는 목련이다. 하염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김치찌개가 냄비 바닥에 보글거리는 것도 몰랐다.

가족들 몰래 뜨거운 물 받아서 한 컵 부었다.

완전 범죄는 표정이 가장 중요한 데 밥상머리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저 목련은 죄가 있을까?


길가다 예쁜 여자 쳐다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그 여자에게 죄가 있을까 없을까?

(참, 돌부리가 없어서 요즘은 전봇대에 부딪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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