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상하게 집에서 음식 만들기가 싫다.
시어머니 모셔다 드린 후부터 나타난 증세인데 부엌에서 뭘 또닥거리며 장만하고
차려서 먹고 이러는 자체가 싫고 음식 먹기도 싫다.
당연하지! 반찬이 먹을 만한 것이 없으니 밥맛도 없고 입맛도 없지.
화요일 저녁엔 언니가 생선구이와 조림 메뉴를 걸고 개업한 식당에서 밥을 사겠다 해서 나갔다.
그동안 깨작거렸던 수저가 분주해진다. 모처럼 입맛이 돈다. 생선을 좋아해서 두툼한 갈치조림
한 조각과 토실한 갈치구이 한 토막을 내 몫으로 먹으니 기어이 뽀얀 쌀밥 한 숟가락을 남겼다.
돌솥밥에 부어 둔 물이 몸을 불린 쌀 누룽지를 숨기고 보글거린다. 이마저 남기고도 배가 똥실하다.
평소 남이 해 준 밥은 악착같이 먹고, 돈 주고 먹는 밥은 알뜰히 긁어먹는데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었다.
언니네는 간판과 광고 사업을 하는데 개업 집이 언니네와 거래하면 무조건 가서 먹고 명함이나
작지만 해줄 수 있는 선물을 건넨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이후로도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면 집안의 가구처럼 그냥 꼼짝 않고 앉아 있고 싶어 진다.
이쯤 되면 주부 사표 낸 셈이고 자격 박탈이다.
어제는 한 시간 빨리 퇴근하라고 해서 도착하자마자 영화를 한 편 볼까 책을 읽을까 갈팡질팡하며
뉴스를 봤다. 코로나 19 현황을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언니가 콩나물 밥을 하고 있다며 와서 먹으라고 부른다. 밥 먹고 같이 걷자 해서 얼씨구 하며 도시락만
씻어 놓고 언니네서 밥을 먹고 만 보를 채우고 왔다. 야근을 하는 남편이 오늘 낮에 먹을 반찬은 또 없다.
오늘 퇴근할 때는 고개를 폭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싶다.
누가 해주는 밥은 잘 먹으면서 어찌 손을 움직이기 싫고 게을러졌다. 그냥 무감해진다.
카톡이 울린다. 언니가 오늘도 돌솥밥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언니 부부와 우리 부부는 오늘도 함께 저녁을 먹고 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코로나 19를 얘기하고
신천지를 욕하며 눈에 서리는 입김을 눈물처럼 질금거릴 거다.
먹은 만큼 에너지 소모는 한다고 열심히 기회 만들어 걷는다. 걸을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어제는 우리 읍에서 확진자 두 명이 나왔는데 대구에서 온 노부부였다. 노부부의 두 딸은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 그들이 들린 곳은 소독하고 검사 후 다시 문을 열었거나 잠시 폐쇄되었다.
회사도 조용해서 책 좀 읽어야지 하다 어느새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방이 조용하고 출근할 때 타는 버스도 거리가 휑해서인지 빨리 온다.
오늘은 햇살이 가득하니 기운이 좀 낫으면 좋겠다.
왠지 나른하고 늘어진다. 봄이 저기서 손짓하는 데 마중하는 걸음이 더디디 더디다.
지난번에 뜨개질한 모자를 빨아서 고운 향나는 섬유유연제에 담갔다가 말렸다.
늦어도 3월 중순까지 보내야 하는 거라 하나씩 봉투에 담고 다시 2개씩, 3개씩 모두 봉투 4개에 나눠 담았다.
모두 10개의 모자를 보내는데 우편료는 받는 사람이 낸다고 쓰여있어 딸이 가지고 갔다.
고깔모자가 꽃만큼이나 곱다.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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