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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따뜻한 마음으로 털모자 만들어 보내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0. 1. 7.


연말연시를 평범하게 잘 보내게 되어 감사한 날들이다.

이런 날에 우리만 잘 보내기보다는 온 세상 사람 모두가 잘 지낸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딸이 또 일을 저질렀다. 해마다 이런저런 돕기를 하겠다며 일거리를 만들어 안긴다. 작년에는 목도리를 떠서 보냈는데 시작은 딸이 하고 마무리는 대부분 내 차지다.

올해도 아기 모자 10개를 떠야 한다. 빈민국의 아가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여 죽어가는데 신생아의 희생이 크다고 한다. 아가들의 체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모자를 떠서 보내는 것이다. 손재주 없는 나도 마음먹으면 금방 하나를 뜬다. 딸이 하나를 떴고 세 개는 내가 떴다. 떠 놓고 보니 모자에 다는 방울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에 나와 있지 않다. 방울 만들 정도의 실이 정확하게 남는다. 10개를 완성한 후에 인터넷을 뒤적여 방울을 달아야겠다.

지금처럼 딸이 나를 가만두지 않고 일거리를 가져다준다면 늙어가며 정신 건강에는 좋을 듯싶다.


뜨개질에 필요한 물품 구매 비용도 당연히 봉사자가 한다. 빨간 가방에 두 묶음의 실이 들어 있다. 설명서와 바늘과 뜨개 판이 들어 있으며 완성 후 모자를 넣고 이름과 글 적을 칸도 나와 있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잡으면 하나를 완성하곤 한다.


딸은 취직과 동시에 노인복지를 위한 후원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알면 말릴까 봐 말을 않고 매월 3만 원씩 보내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석 롯데마트에서 유니세프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딸이 내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가서 서류 작성을 같이했다. 노인복지회 후원금도 있는데 부담되지 않냐고 했더니 괜찮다며 조금 덜 쓰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각자 월 3만 원씩 후원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런 딸 앞에 자신이 부끄러웠다.

작년 말부터 딸에게 노인복지 후원금은 끊으라고 했다. 연말에 보내오는 얇은 책자와 사진으로 보니 아무래도 미덥지 못했다. 모금하는 곳은 영등포 무슨 복지회인데 해마다 사진은 성남 어느 복지관의 할머니들 행사하는 것이었다. 사설인 데다 매번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딸은 찜찜하게 생각하더니 끊었고 처음 후원 계기가 잠실에서 버스 기다리는 데 어느 분이 다가와 내민 종이를 보고 후원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리석은 결정이 아니었나 싶지만 좋은 곳에 쓰였으리라 믿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아들도 취직하자마자 월드비전에 월 5만 원씩 후원하고 있었다. 작년 8월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다 독일 유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결국 독일에서 공부 중이다. 독일로 떠나기 전 부탁이 있다며 후원하는 아이가 있는데 아들이 못하면 그 아이는 학교도 그만둬야 하고 굶어야 한다며 대신 좀 해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 마디로 잘랐다. 지금 내가 후원하는 곳도 있고 나보다 못한 이웃들에게 암암리에 챙겨주는 것이 있어 부담스럽다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들은 원망하지도 않고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더니 유학 중에도 후원하고 있었다. 얼마 전 택배가 왔는데 그곳엔 후원자들에게 오는 달력이 들어있었다. 아들이 모은 돈으로 공부하고 있어 별도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그리 넉넉하지 않으면서 후원을 한다는 그 마음 씀씀이에 만족한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엄마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참여하고 싶으시다면~

세이브 더 칠드런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인터넷 검색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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