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아진 탓에 7시 남짓한데도 개울가 산책로엔 가로등이 없어 혼자 걷기가 머뭇거려진다.
둘이 걷다가 혼자 걸으려니 개울가 산책로 쪽은 내키지 않아 반대쪽 새로 지은 아파트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 아파트는 예전처럼 한 방향으로 나란히 반듯하게 바라보게 짓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ㄱ 자로 이어 붙인 듯하고 높이도 20층이 최고였던 20년 전과 다르게 30층은 물론이요, 그 이상도 짓는다. 이곳은 새로 형성된 2001 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라 거리도 깨끗하고 넓은 데다 가로등도 LED라 밝다.
오래되어 2년에 한 번씩 외벽 페인트 칠하는 우리 아파트와 비교된다마는 요즘은 베란다를 아예 터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주 작은 베란다만 있어 널찍한 베란다에 햇볕 바라기 하기 좋고 시원스레 호스로 물 뿌리며 벽에 나란한 화초에 물 주는 걸 좋아하는 내가 느끼기엔 폐쇄된 느낌이 강했다. 대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다세대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만의 공간으로 안락함과 외부와의 단절감이 훨씬 좋았다. 창을 닫으면 바람 한 점, 소음 하나 들어설 틈도 없다. 고층에 문을 닫으면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에 앉은 듯 고요하기까지 하니 '고립무원'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고요하다. 물론 그곳으로 잠시 이사한 언니네 몇 번 가본 경험으로 하는 말이다.
나는 헐렁하고 틈이 많은 집에서 남동풍이나 북서풍이 목적지를 향하는 길에 우리 집 곳곳을 휘젓다 가는 것에 익숙하다. 아침마다 거실 창과 베란다 창을 열고 맞은편 부엌 창을 활짝 연다. 오늘 아침은 창을 여니 추위가 와락 덤벼들었지만, 상큼한 가을 향이 온 집에 들어서는 것 같아 반갑고 베란다에 자리한 아보카도 나무에 물 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젯밤 널어 둔 빨래는 남으로 들어서는 햇살과 바람결에 수분을 전하고 있을 시간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 한쪽에 개울이 있고 맞은편에 낮은 산이 있으니 배산임수다. 그 옆으로 자꾸만 산이 깎인다. 산이 깎이고 번듯한 교회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위로는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며 또 산을 깎고 터를 고르고 있다. 이러다 산이란 산은 다 없어지지 않으려나 염려가 된다. 쓸데없는 염려를 나는 자주 한다. 혼자 걷는 저녁 산책은 나름 즐겁다. 주변의 나무가 가을을 맞는 모습이 처연한데 쑥부쟁이는 이제 한창이다. 배롱나무는 백일을 다 채웠는지 봄꽃처럼 날리며 조금씩 떨어진다. 나무수국은 꽃잎마다 누렇게 오므라든다. 느지막이 피는지 맨드라미는 밤길 철조망 밖에서 붉다. 이곳은 개울가 산책로와 다르게 안전망이 쳐져있고 밝아서 늦게까지 걸어도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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