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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9월을 지나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9. 9. 25.

 

 

  해가 짧아진 탓에 7시 남짓한데도 개울가 산책로엔 가로등이 없어 혼자 걷기가 머뭇거려진다.

둘이 걷다가 혼자 걸으려니 개울가 산책로 쪽은 내키지 않아 반대쪽 새로 지은 아파트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 아파트는 예전처럼 한 방향으로 나란히 반듯하게 바라보게 짓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ㄱ 자로 이어 붙인 듯하고 높이도  20층이 최고였던 20년 전과 다르게 30층은 물론이요, 그 이상도 짓는다. 이곳은 새로 형성된 2001 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라 거리도 깨끗하고 넓은 데다 가로등도 LED라 밝다.


  오래되어 2년에 한 번씩 외벽 페인트 칠하는 우리 아파트와 비교된다마는 요즘은 베란다를 아예 터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주 작은 베란다만 있어 널찍한 베란다에 햇볕 바라기 하기 좋고 시원스레 호스로 물 뿌리며 벽에 나란한 화초에 물 주는 걸 좋아하는 내가 느끼기엔 폐쇄된 느낌이 강했다. 대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다세대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만의 공간으로 안락함과 외부와의 단절감이 훨씬 좋았다. 창을 닫으면 바람 한 점, 소음 하나 들어설 틈도 없다. 고층에 문을 닫으면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에 앉은 듯 고요하기까지 하니 '고립무원'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고요하다. 물론 그곳으로 잠시 이사한 언니네 몇 번 가본 경험으로 하는 말이다.


  나는 헐렁하고 틈이 많은 집에서 남동풍이나 북서풍이 목적지를 향하는 길에 우리 집 곳곳을 휘젓다 가는 것에 익숙하다.  아침마다 거실 창과 베란다 창을 열고 맞은편 부엌 창을 활짝 연다. 오늘 아침은 창을 여니 추위가 와락 덤벼들었지만, 상큼한 가을 향이 온 집에 들어서는 것 같아 반갑고 베란다에 자리한 아보카도 나무에 물 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젯밤 널어 둔 빨래는 남으로 들어서는 햇살과 바람결에 수분을 전하고 있을 시간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 한쪽에 개울이 있고 맞은편에 낮은 산이 있으니 배산임수다. 그 옆으로 자꾸만 산이 깎인다. 산이 깎이고 번듯한 교회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위로는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며 또 산을 깎고 터를 고르고 있다. 이러다 산이란 산은 다 없어지지 않으려나 염려가 된다. 쓸데없는 염려를 나는 자주 한다. 혼자 걷는 저녁 산책은 나름 즐겁다. 주변의 나무가 가을을 맞는 모습이 처연한데 쑥부쟁이는 이제 한창이다. 배롱나무는 백일을 다 채웠는지 봄꽃처럼 날리며 조금씩 떨어진다. 나무수국은 꽃잎마다 누렇게 오므라든다. 느지막이 피는지 맨드라미는 밤길 철조망 밖에서 붉다. 이곳은 개울가 산책로와 다르게 안전망이 쳐져있고 밝아서 늦게까지 걸어도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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