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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엄마 뵙고 온 날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8. 11. 21.


 봄부터 영천 요양 병원에 계신 엄마한테 가야지 하면서 이런저런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이럴 줄 알았다는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조급했다. 엄마 연세가 91세이니 언제 어떻게 되었다 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불안한 마음에 남편의 허리 수술로 장거리 운전은 힘들 것 같아 혼자라도 휭하니 다녀와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정 남매들과 수안보 여행을 계획했는데 대부분 바쁜 일이 있어 다음으로 미루게 되어 우리 부부만 가기로 했다. 이참에 새벽에 출발하여 영천으로 가자는 남편 말에 장거리 운전으로 허리에 무리가 가면 어쩌나 입에 발린 소리 슬쩍 하고는 고마운 마음으로 나섰다. 6시경 출발해서 휴게소 두 곳이나 들러 커피 마시고 간식도 먹었지만 요양 병원에 들르니 9시 8분이다.

 엄마는 여전히 아가 같은 모습으로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가르마를 가지런히 타서 틀어 올린 머리에 은비녀를 단정히 꽂고는 동백기름 양 손바닥으로 싹싹 펴 바르고 매무새를 마치셨던 엄마의 머리카락은 흔적도 없었다. 그저 자주 다니시던 거동사 절의 스님처럼 빡빡 민 머리로 조용히 누워계셨다. 곁에 가만히 앉아 손을 잡자 꿈결인 양 작은 눈을 조금 떴다가는 이내 다시 감았다.

 엄마 얼굴 가까이서 소곤소곤 엄마 막내딸 보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얼굴 봐야 한다며 쓰다듬으니 다시 눈을 번쩍 뜨시고는 정말이냐며 우리 막내 맞냐고 물으신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렇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 해서 새벽같이 달려왔으니 얼굴 좀 보라고 끌어안고 법석을 떨었다. 활짝 웃으시는 엄마는 잠시 나를 알아보셨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이젠 자식들 이름마저 잊으셔서 이름을 대고 사랑한다고 말하니 엄마도 간호사에게 배운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며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휴게소에서 사 간  달곰한 빵을 조금씩 입에 넣어 드리니 아주 조금밖에 드시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까무룩 한 잠속으로 빠져든다. 잠시 엄마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른쪽 발등이 보랏빛으로 넓게 멍이 들통통하게 부었다. 바셀린을 발라두었는지 반질반질하고 아가 피부처럼 보드랍고 뽀얗다. 손과 발 얼굴 할 것 없이 전부 푸석하게 부었지만, 다리는 바짝 말라 수분을 다 증발시키고 남은 가을 들판의 수숫대 같다. 휴게소에서 간호사실에 줄 만한 걸 찾다가 경주빵 한 상자를 사서 드렸는데 간호사가 뛰어와서 몸이 붓는 것은 단백질 부족이라며 매점에서 사다주면 식사 시에 섞어서 드리겠단다. 남편은 듣자마자 매점으로 갔으나 10시에 문을 연다 했는데 10시 40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문을 열었다. 당장 단백질 보충제를 사다 드리며 부탁했다. 얼마나 먹는 게 부실할까 마음이 쓰라렸다. 내 좋자고 내 마음 위안되자고 엄마를 뵙고 오는 길은 허망하고 서러웠다.


 오빠네로 가니 오빠 역시 혼자라 치아가 부실해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계셨다. 점심 먹으러 함께 가서 추어탕과 다슬깃국을 먹고는 수안보로 향했다.저녁 무렵 수안보 연수원에 도착하여 밀린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야속하게도 다시 내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불효자가 되었다.









돌 틈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발하는 가을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다.

점심시간 20분에서 30분 정도 걸으며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꽃과 나무를 보면

죽음 바로 앞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구나 한다.

떨어지기 직전의 단풍은 어느 물감으로도 칠할 수 없는 색을 보여주고

꽃은 또 얼마나 단단하게 피어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엄마도 굳은살 박인 손과 발은 매우 부드러워졌고 피부는 아가처럼 뽀얗다.

가장 순한 모습으로 곱게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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