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새벽에 출발하는 남매들을 위하여 금요기도회에 불참을 하고 약식을 만들었는데 막내씨 표현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약식"이라고 하니... 렌트카 안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거문오름을 다녀오니 뱃속에서 약식과 밥은 다르니 점심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거문오름에서 가까운 명진전복에 도착하니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성질이 급한 혈통을 가진 청안이씨들이 전복을 포기할지라도 기다릴 수 없음을 내가 잘 알기에 옆에 있는 종가전복으로 가서 전복영양밥과 전복구이로 푸짐하고 넉넉한 점심을 행복한 마음으로, 회비에서 감당을 하니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게 먹었다.
오후 일정은 우도였는데 새벽부터 설친 오빠와 언니들과 동생들이 우도는 힘들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나에게 압력을 가한다.
대체 일정으로 보롬왓을 넣었기에 망설임없이 보롬왓으로 달려가니 한때를 지나고 반때가 남은 수국과 보랏빛의 라벤더가 가득한 곳에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껴안으며 포즈를 취하고,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예비신부와 싱글벙글한 입매를 감추지 못하는 예비신랑이 웨딩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꽃이 잔치를 벌이는 곳이라 청안이씨들 역시 웃고 떠들며, 앉았다 일어섰다, 걸치고 꼬고 비틀며 사진을 찍는다.
역시 사진은 작은언니를 따를 사람이 없고, 모델이 되기 좋아하는 동생은 몸매는 뒷전인채 폼 잡기에 바쁘다.
탐스러운 수국 꽃송이를 보니 나는 자꾸만 한 송이를 꺾어다가 어여쁜 아가씨 손에 들려주고 싶어진다.
꽃이 아무리 예쁜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사는 진리이다.
외삼촌과 이모들의 여행을 위하여 조카 정호가 휴가를 내어서 도우미로 나섰다.
착한 마음은 기본이요 착한 얼굴과 바지런한 몸짓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한결 편안하고 쉬운 여정을 보낼 수 있었고 유능한 사원의 여행을 위하여 회사팀장이 별다방 아이스커피를 핸드폰으로 보내주심으로 즐거움이 땡볕에서 마시는 냉커피의 시원함만치 커진다.
일찍 숙소로 돌아와 쉬는 시간, 큰오빠가 우리가 있는 방으로 찾아오셔서 뭉칫돈을 내민다.
비행기표는 미리 조카 민지가 예매했지만 모든 경비는 회비에서 부담하기로 했고, 큰오빠만 회비에서 빠져 있었기에 부담이 컸나보다.
오빠의 뭉칫돈을 돌려드리며 저녁이나 쏘시라고 하며 오빠가 듣지 않는 곳에서 우리끼리 "회는 먹지말고 물회만 먹자. 오빠 돈 많이 쓰면 안돼"라고 수국 꽃밭의 대화로 수국수국거리는데 베란다에서 오빠가 들으셨나 보다.
"괜찮다. 좋은거 먹어도 된다"고...
도두해녀의집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기도 하지만 맛집이기도 하다. 특별히 물회가 맛있는 집이라 오빠 덕분에 특물회(전복+한치+성게)가 들어간 물회와 소주 2병과 맥주 1병으로 만찬을 즐겼다.
식사 후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도두공원을 한바퀴 돌며 민낯으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은채 죄없는 제부만 들볶아 '잘 나올때 까지'를 연발하며 괴롭혔다는 사실이다. ㅋㅋ
한국과 멕시코의 축구를 기다리며 오랫만에 6남매와 조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뜻하지 않게 정호가 외삼촌에게 이모들의 어린시절과 각자의 성격을 질문하는데 내 속에서 응어리진 가시가 얼굴을 내민다.
유년시절의 우리를 기억하는 오빠는 각자의 특징을 하나씩 말씀하시는데,
장녀라는 이유로 늘 경제적인 것을 책임지며 보이지 않은 곳까지 세밀하게 챙기는 언니는 든든한 동생으로,
이런저런 자잘한 것들을 오빠네로 조카네로 나누는 작은언니는 헤프게 나누어주는 베푸는 동생으로,
어릴 때 부터 욕심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나를 보고 '저 동생을 보고 교회에 가보고 싶었다'는 말씀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고 특히 나를 감동하게 했다.
제일 머리가 좋고 똑똑한 동생으로는 진숙이가,
어디를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동생으로는 막내씨가 기억에 저장되어 있었다.
동생들을 향한 오빠의 생각에 놀라면서 어릴적의 기억과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 속에 남은 상처가 고개를 치밀어 오르고 이 때를 놓쳐선 안된다는 생각에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적 유난히 예뻐하던 진숙이는 똑똑했기 때문이었을까? 진숙이와 싸우면 오빠는 늘 진숙이를 편들었고, 어린 내가 생각해도 진숙이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만 과중한 체벌을 했었다. 그래서 난 오빠가 휴가오는 것이 가장 싫었고 오빠가 없는 친구들이 몹시도 부러웠으며 오빠에게는 강한 거부감이, 아무것도 모르는 진숙이에겐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적대감이 오늘까지 나를 괴롭혔다"고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고백을 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섭섭했던 진숙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오빠 역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죽기 전에 내 속에 든 매듭이 풀어져서 감사한 일이다.
정호가 "외삼촌 이모들을 한번씩 안아주세요"라는 말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오빠가 동생을, 동생이 오빠를, 언니와 동생이, 동생과 언니가 서로를 힘껏 껴안으며 설핏 눈가에 반짝이는 이슬을 줍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함께하지 못한 작은오빠가 마음에 남고, 규락이를 향한 걱정이 모두에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빠의 연락을 받고나니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그동안 기도하지 못한 미안함이 고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리다.
한국과 멕시코전 전반전이 끝이나자 "내일아침에 2대 1로 이겼다'는 소식을 듣자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도란도란 피우는 이야기꽃은 끝간데를 모른다.
이미 잠이 든 작은언니와 진숙이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큰언니와 막내씨와 나의 공통점이 놀랍다.
끝없이 배우며 도전하는 언니, 잠재되어 있던 詩를 끄집어내고 공부하고 싶어하며 노력하는 현숙,
독서와 운동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나..
모두가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훌륭하다.
아들보다 어린 선수들은 제주도의 푸른 밤도 잊은채, 공 하나를 가지고 이리 차고 저리 돌리며, 넘어지고 일어나고,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을 등에 지고 밤도 잊은채 죽을 힘을 다하여 뛰고 있는 밤,
부디 내일 아침 좋은 소식이 들려지기를 기다리며, 꿀처럼 달디단 잠 속으로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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