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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물 맑음 수목원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8. 4. 30.

 이젠 휴일이면 이리저리 쏘다닐 계획만 세우는 자신을 보니 봄바람이 아주 야무지게 잘도 들었다.

목요일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가 인사를 건넸더니 목이 쉬어서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리셨나 보네요!" 하니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목이 그리 쉬었는지 갸우뚱하는데 하루 전에 물 맑음 수목원에 가서 친구들과 나무 아래에서 웃고 떠드느라 목이 쉬었단다. 현재 물 맑음 수목원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으며 아주 좋다고 꼭 가보라 했다. 귀가 솔깃했다. 개인이 하는 수목원이라 홍보를 위해 당분간 무료로 공개 하나보다 생각했다.


 금요일 퇴근길에 새로 생긴 정육점에서 비싼 돼지 등갈비를 반값 정도 할인하기에 밤새 핏물을 우려냈다. 토요일 아침 핏물 뺀 등갈비를 한 번 삶아서 깨끗이 씻은 다음 묵은김치를 깔고 등갈비 김치찜을 하며 빨래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느지막이 일어나 집안일을 하는데 계획이 있어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나 문화센터에서 8시에 수영 한 시간 하고 와서 등갈비 찜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여 들어오면서 속으로 오늘도 꼼짝없이 잡혔구나! 저리 설쳐대니! 했을 거다.

 

 전날 계획은 토요일 오전에 안 입는 옷 정리하여 버리자 했는데 다짜고짜 옷은 다녀와서 정리하자고 하니 찜찜한 눈치다. 이럴 땐 한발 물러서는 게 좋다. 계획대로 후다닥 옷 정리를 했다. 오래전 양복은 단추가 세 개라 촌스럽고 바지 폭이 아주 넓다. 수선하기엔 색이 별로다. 드라이까지 해서 걸어 둔 양복이 몇 벌이나 된다. 아까워서 안 입어도 뒀는데 미련 없이 버리기로 하고 한 보따리 무겁게 내다 재활용하는 곳에 넣었다. 장롱에 숨구멍이 생겨 여유롭다.

 내 옷은 수시로 눈에 띌 때마다 내다 버렸더니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 남편 옷은 본인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있어 마음대로 버리질 못해 보는 앞에서 흥정하듯이 둘의 의견을 모아 버리고 그중 마음에 들어 샀다가 한 번 입고는 색이 아주 곱다거나 비슷한 디자인의 옷이 여러 벌인 것은 옆에 사는 형부에게 몇 개 넘겼다. 새 옷이 아니라 미안했지만 낚시갈 때라도 입으시라며 드리고 마음에 걸려 새 양말 두 켤레를 들고 갔다. 오래간만에 형부 가게에서 언니 부부와 같이 시원한 커피 마시고 놀다 보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수목원으로 가자며 수동면으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는데 마치터널에서 17.7km 거리였다.

시간은 30분 걸린다고 나왔다. 가다 보니 그리 멀지도 않고 조용하고 길도 막히지 않았다. 우리 집에선 20여 분이면 되는 거리다. 여기저기 산 중턱 하나를 꽃과 나무를 심고 쉼터도 만들어 두었고 자세히 보니 개인이 하는 곳이 아니라 남양주시에서 만드는 중이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 입장료가 없었으며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고 맑고 깨끗했다. 완공되면 입장료 2천 원에 주차료 3천 원이라 한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돌아보니 어설펐으나 돌아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길엔 계곡도 있고 휴양 쉼터며 나무 아래 벤치도 놓여있고 꽤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올랐으면 좀 더 여유롭게 잣나무 아래에서 쉬다 오는 건데 왼쪽으로 가는 바람에 좋은 경치는 놓친 셈이다.

 아침 수영에 오전 옷 정리까지 했더니 피로가 확 느껴져 잠시 앉았다가 다음에 다시 오자며 돌아오는데 이젠 배가 고팠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11시 조금 넘어 먹었으니 5시가 다 된 시간이라 뭐라도 먹어야 한다. 어떻게 된 몸이 갑자기 식은땀이 나며 후들후들하다. 당 떨어진 사람처럼 기진맥진하여 맛집으로 불리는 중국음식점으로 가 수타 짜장과 짬뽕을 시켜서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다. 조만간 물 맑음 수목원에 다시 갈 생각이다. 도시락을 싸고 책 한 권 넣고 가서 오래오래 앉았다 오면 좋을 곳이었다. 

 

 처음 왼쪽으로 돌아볼 때는 수영장 언니가 목쉴 만큼은 아닌데 싶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오면서 이래서 목이 쉬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꼬불꼬불 휘어진 도로로 가야 하지만 현재 고속도로 공사 중이었다. 주민들은 고속도로 공사 반대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 두고 항의 중이었으나 굴착기가 땅을 파고 인부들은 뙤약볕 아래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돌아보면서 좋기도 했지만 이런 깊은 산속을 굳이 이렇게 개발해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은 인공적인 식물원처럼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 중이었으나 오른쪽으로 내려올 때는 최대한 자연 그대로를 이용하여 벤치를 두고 계곡을 따라 계단식 길을 만든 셈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장단점이 있겠다마는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 자연은 아프다.

 산이 점점 줄어들어 안타까운 마음은 가득한데 이미 건설 중이고 내 마음 같은 건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깊은 골에 허가가 나고 수목원이 지어지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산이 잘려나가고 형태가 바뀔까? 개인적으로는 수목원이든 별장이든 그만 짓고 산과 나무와 숲과 들은 그대로 개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