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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저녁나절 강물 구경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8. 3. 28.


 장마가 시작되자 가물어서 비를 기다리던 마음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눅눅해진 빨래며 사방 습기가 가득해 벽지가 이스트에 재워 둔 밀가루처럼 보풀보풀 공간을 차지하며 영역을 넓힌다. 실내에 널어 둔 빨래에선 퀴퀴한 냄새가 집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제습기를 틀어서 말려도 뽀송뽀송한 햇살에서의 말림과 다르게 눅눅하고 섬유유연제가 듬뿍 들어가도 향이 상큼하지 않다. 그새 가뭄의 고통보다 당장 꿉꿉함이 싫어 얼른 비가 그쳤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고 그치면 그치는 대로 좋은데 투덜댄다니 부끄럽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가끔 학교 가기 싫어서 큰비가 내리는 날이 좋았다. 강 건너 사는 친구들이 강물 때문에 결석해야 하는 날은 학교 갔다 바로 돌아오기도 하고 학교 오지 말라는 비상 연락망이 오기도 했다. 숙제가 많거나 내가 싫어하는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이면 비가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비 오는 날은 좁은 방 안에만 갇혀 있다가 갑갑증이 일어 빨리 비가 그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학생의 도리는 하기 싫고 그저 놀기만 좋아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비가 많이 오다가 잦아들 무렵엔 아버지와 함께 내 키만 한 우산을 질질 끌며 황토물이 철철 흐르는 강물을 보러 나갔다. 위세 당당하게 범람하는 물이 덮칠 듯 무섭게 넘실거렸지만, 아버지가 앞서 걸으셔서 무서울 게 없었다. 집 앞 도랑물은 논에서 흘러넘쳐 한길을 오르내리며 누렇게 흘렀다. 집 옆 모퉁이에는 산속 연못물이 넘쳐 물고기와 풀들이 뒤엉켜 둥둥 떠내려오곤 했다. 우리 집과 건넛마을 사이에 있는 큰 강은 초록 들판과 비교되어 더 누레 보였다. 가는 물줄기들이 마을과 마을에서 흘러내려 강으로 모여들었을 때는 누런 사자가 갈퀴를 날리며 무리 지어 들판을 뛰어다니는 모습 같았다.

 강물이 넘치도록 출렁일 때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넉넉한 기분이 들었다. 황토물은 한나절에서 하루 정도 지나야 투명하고 맑은 색으로 바뀌었다. 그런 날은 산에서 집 모퉁이를 따라 내려오는 물에선 달큼하고 싱그러운 향이 났다. 향을 따라 뒷골목으로 들어서며 누런빛이 차차 맑아지는 과정을 보노라면 어린 마음에 신기하고 그저 좋았다.


 비 그친 다음 날이면 아버지는 그 시절 흔치 않았던 귀한 종이를 꺼내 종이배를 만들어주셨다. 아버지는 빳빳한 종이를 어디에 간직하고 계시다 요술 방망이처럼 꺼내시는지 몹시 궁금하다가도 몇 번 접어 뚝딱 배 한 척이 만들어지는 순간 종이의 출처는 중요하지 않았다. 늦둥이 막내딸과 함께 배를 들고 물줄기를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앞서 걸으셨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에 집에는 항상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떠다녔고 조금 걸으신 후면 쇳소리를 내며 주저앉아 숨을 고르시곤 했다. 그런 날은 아버지의 쇳소리도 기침 소리도 넘실대는 물소리에 휩싸여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마을에서 내려오는 냇물 앞에 앉아 종이배를 띄워놓고 종이배를 따라 강으로 내달았다. 종이배가 떠내려가다 나뭇가지에 걸리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금세 긴 막대로 길을 내주시곤 하셨다. 그 시절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존재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었고 배경이었다. 뭐든 말만 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사소한 것이라도 젊은이와 연륜이 있는 분들은 다르다. 경험만큼 큰 스승이 어디 있을까?

 장마 전에는 종이를 준비해 두셨던 아버지의 손에는 종이배를 띄우러 갈 땐 어김없이 긴 나무막대가 들려져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큰 가르침이 되었다. 아버지와 종이배를 띄우는 시간이 좋아 비 오는 날을 더 좋아했던 어린 날이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종이배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종이배라는 말만 들어도 아버지가 떠오르는 걸 보면 둘의 관계는 떼놓을 수 없는 상관관계다. 나는 여전히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나 비가 그친 후면 시냇물을 따라 걸으며 큰 강까지 나가 황토물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한동안 아파트 뒤 강에는 긴 가뭄으로 바싹 말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들판처럼 변해있었다. 서글프고 안타까워 보였던 강은 오늘 오전까지 내린 며칠간의 장마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무성하게 자라나던 초록 풀들이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모두 드러누웠다. 저녁나절 강물 구경을 나갔다 반가운 생명을 만났다. 물이 없어 떠났던 오리 가족이 물 가장자리에서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모습과 쇠백로가 긴 목을 빼고 우아하게 선 모습으로 풍경을 더했다.

 저녁나절 강물 구경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그윽한 내리사랑을 되새김질했다. 열 번, 백 번을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고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 같은 추억이다. 지금쯤 어제 보았던 황토물은 다시 맑은 물로 바뀌어 유유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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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쳤던 비가 다시 몇 방울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들고 갔던 우산을 펼치며 오는데 버스정거장 앞에서 어떤 학생이 방실방실 웃으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하여 여기 ㄱ 아파트라 하니 잘됐다며 "우산 좀 씌워 주세요. 저도 거기 살아요~!"한다. 학생이 성격도 좋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다가오다니! 의아하면서도 당돌함이 느껴졌다. 집까지 걸어오는 몇 분 동안 재잘대며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아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저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을 법한 비였다.

 학생의 집은 아파트 초입의 동이라 모녀지간처럼 팔을 잡고 집 앞 출입구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24살의 대학원생이고 우리 애들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성격이 좋아 보여 우리 아들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들 녀석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은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예의 바르고 총명해 보이고 싹싹하기까지 한 그 학생으로 인해 저녁 강물 구경이 싱그럽고 더 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우리 부부는 강물 구경의 시작은 둘이 나란히 도란거리며 나섰지만, 돌아오는 길은 남남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랬다.

 (작년 여름 장마통에 쓴 글인데 블로그 방치 방지용으로 장마 오기 한참 전인 4월 4일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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