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마음의 보석상자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한다.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9. 18.

 

아주 오래된 사진 (어찌어찌 살다 보니 앨범을 몽땅 다 잃어버려서 큰 언니가

간직하라며 가져다준 어릴 적 사진)

 

아버지의 옷은 몇 벌이었을까?

외투는 돌아가실 때까지 두루마기밖에 기억에 없다.

굳이 애써 생각해보면 누런 황금색의 한복 마고자인데 같은 황금

자잘한 무늬가 있었던 그 옷과 단 두 가지이다.

 

한복 마고자 누런 황금색의 그 옷을 입으실 적마다 

두어 개 달려 있던 단추는 먹음직스런 사탕처럼 어쩜 그리도 투명하며 달곰하게 생겼는지,

 볼 적마다 큼직한 사탕을 볼이 불룩하도록 입안에서 굴리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선 나를 슬프게 했던 아버지 옷이고 아버지 옷 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옷이다.

 

 아버지의 옷은 몇 벌이나 되었는지 문득 궁금증까지 일었다.

여름내 하얀 반소매 러닝셔츠를 입으셨고 바지는 늘 회색 한복 바지였는데

외출할 때는 좀 반지르르 윤기 나는 회색 바지였고 그 외에는 집에서나 밭에서나

산에 갈 때조차 회색 한복 바지였다. 손으로 꼽을 정도의 가짓수이다.

 

한겨울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던 그때 윗동네에서 놀다 밤늦게 돌아오셔서

잠자던 나를 깨우던 냉기 도는 아버지의 윗옷은 여전히 하얀색의 한복이었고

덧입은 조끼는 흐린 회색이었다.

달곰한 단팥빵을 숨겨두었던 조끼 주머니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손장난에 여기저기서 요술처럼 단팥빵이 툭툭 튀어나왔던

아버지의 조끼는 늘 소박하였지만 풍성했다.

그때도 아버지의 바지는 폭신한 한복 바지였다.

 

사진을 보면서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평생을 살다 가셨던가? 싶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의 입성과 모습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두루마기를 보니 하얀 동정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의 두루마기와 한복에 하얀 동정을 달고 계시던 흐린 등불 아래

쪽 찐 머리의 엄마 모습이 선명하다.

손끝이 야무졌던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구나 싶어 눈물겹다.

엄마가 아버지의 입성에 유난히 신경 쓴 부분이 동정 달기였다면

나는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에 정성을 쏟았다. 


특별한 놀잇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을에는 동갑내기 친구도 없었던 터라 

주로 집 앞 개울가에서 놀았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버지의 흰 고무신을 들고

뽀얗게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물을 털어 댓돌 옆에 세워놓고

스스로 흐뭇해했던 날들. 아버지의 칭찬을 먹고 살았던 때였다.


아버지의 인자하신 모습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을

열여덟 살까지 만지작거렸던 내 손을 가만 들여다본다.

그때의 사랑이 아직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단 한 켤레뿐이었던 구두를 반지르르 윤기 나게 침을 발라가며 밤늦도록 닦아

신고 나섰던 아버지와의 서울 나들잇길.

작은 오빠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후 창경궁과 경복궁으로 놀러 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큰 언니는 목욕탕도 데려갔고 머리에 굵은 롤을 말아서 재운 후 새로 사 온 빨간 구두와

하늘색 점퍼를 입혀주었고 아버지는 빨간 벙어리장갑을 목에 걸어 주셨다.

나는 그 시절 아버지와 가족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나절 강물 구경  (0) 2018.03.28
빈집  (0) 2017.10.13
노란 더위  (0) 2014.08.12
오늘은 아버지가 몹시 그리운 날  (0) 2014.07.21
아마도 이런 봄날  (0)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