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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아마도 이런 봄날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3. 6.

 

아마도 이런 봄날이었던 듯하다.

우리 동네 양지마을이 발칵 뒤집혔던 날이!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폴짝거리며 개구리 겨울잠 깨듯이

꽃샘추위도 아랑곳없이 입학식에 상급학교 진학에 작은 동네는

더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하릴없이 뒷동네로 겅중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논밭에

살랑 고개 내민 보리를 밟으며 초록 들판을 보며 신나던 날이었다.

하굣길에 방안에다 책가방을 휭하니 던져놓고 뒤란으로 가 엄마를 찾는데

뒷마당에선 외숙모의 파리한 얼굴과 애달파 못 견디는 그야말로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게 한 눈에도 알아볼 정도로 눈물 바람이었다.

 엄마가 외숙모를 달래는 말을 듣자 하니 기어코 사달이 나고 말았다.

몇 달 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화장품을 팔러 다니는 그 넙데데한 아저씨가

우리 동네 끝에 사는 외갓집 언니와 야반도주를 하고 만 것이다.

당시 내 눈에 비친 그분은 아저씨로 보였으나 사실은 총각이라는 말과

외갓집 언니와 서로 사랑하였고 외갓집의 반대로 결국 보따리 하나를 챙겨

화장품 총각을 따라 집을 나갔단다.

 초등학교 교문 옆 벚나무 아래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기다렸다가

이슥한 밤에 언니를 태우고 훌쩍 말만 듣던 서울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때 난 어렸지만, 화장품 장사하는 넙데데한 아저씨가 윗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꼭 우리 집 뒤편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이는 많아 보여도 인상은 정말 좋았던 그 아저씨와 키 작고 야무진 외갓집 언니는

말만 들은 서울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단기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 말이 떠오른다. 용기가 있어야 사랑을 쟁취한다. 

형부가 된 그 아저씨는 얼마나 노력했으면 결국 십여 년만에 작은 사업체를 장만하여

사장님이 되었고 이런 소문은 야반도주했을 때처럼 시골 구석구석 빠르게 퍼졌다. 

양손 무겁게 선물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당당하게 처가에 나타난

형부와 언니는 외숙모의 작은 눈이 옆으로 아래로만 처지는 것을 알고

틈을 노려 슬쩍 봉투도 내밀었다.

다녀간 후로는 자주 소포가 오고 외숙모는 꽃분홍 스웨터를 입고

하릴없이 골목 끝에서 끝을 오갔다. 야반도주의 끝은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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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천에서 제법 큰 중소기업체를 운영하고 계신 형부는 여전히

나이보다는 들어 보이지만, 인상 좋은 사장님으로 건재하시고,

언니는 작은 체구에 야무진 모습으로 친정 부모에게 최고 잘하고 형제들과

친척들에게도 넉넉하게 베풀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동네가 어수선하던 사십여 년 전 그날은 마치 오늘처럼 새초롬하게

흐리면서 약간 매운바람이 불던 봄이 시작되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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