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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장마 1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1. 7. 14.

                    

긴 긴 장마다.

해마다 장마는 잊지 않고 찾아온다.

어릴 적 장마 때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도 있지만

어둡고 서늘한 추억도 몇 가지가 있다.

냇물이 모여서 큰 강으로 이어지는 황토물을 일부러 구경하러 나서기도 하고

냇가에 퍼덕거리며 우왕좌왕하는 물고기들을 잡기도 하고

산에 있는 작은 연못이 넘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았는데

연못 주인이 내놓으라며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요즘처럼 비가 길고 길었던 장마통에

분늠이 아버지는 30리 너머에 살고 계시던

분늠이 큰아버지가 강을 건너다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가서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지게에 무언가를 가득 지고 하얀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볏단으로 만든 우비를 어깨에 걸치고

분늠이 큰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침나절 동네 어귀를 떠났다.

분늠이 아버지와 분늠이 큰오빠와 다른 친척 두어 분이 같이

웅성거리며 떠나던 날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비가 아직도 그치지 않고 내리니까

조심히 잘 다녀오시라 손 인사를 했다.

 

그날 저녁 무렵 온 동네는 발칵 소란이 일었다.

아주 작은 꼬마인 나도 두 살 어린 분늠이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침나절 분늠이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동네 어귀에 모여들었다.

분늠이 큰아버지 장례 치르러 떠나셨던 분늠이 아버지가  

젖은 볏단같이 멍석에 둘둘 말린 채로 조카의 지게에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객사라 집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며

골목길 중간쯤에 멍석을 깔고 눕혔다가 분늠이네 앞마당에 다시 모셨다.

안타까움은 모두에게 있었고

까마득한 어린 날 장마통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분늠이 아버지는 바지를 몇 번 접어서 둥둥 걷은 채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리도 없는 큰 강을 지게 작대기 하나로

버티다 미끄러지셨을 것이다.

큰 강을 건너야만 분늠이 큰 집으로 갈 수 있었던 단 하나뿐인 그 강을 

형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건너던 분늠이 아버지는 

끝내 우애를 과시하려는지 분늠이 큰아버지와 나란히

장맛비를 맞으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해에도 올처럼 장마가 길고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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