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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장마 2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1. 7. 27.

                         

 방학을 며칠 앞두고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빗줄기는 세력이 약해져 보슬보슬 내리다가 조금 더 굵어지다 했다.

하교 시간 선생님께서

"내일도 비가 많이 오면 개울 건너 사는 사람들은 결석해도 되니까 학교 오지 마라" 하셨다.

이 무슨 횡재?! 하면서 다리 건너 소미기 사는 친구들과 탑전에 사는 친구들 그리고 골안 칠기듬 사는 친구들 모두 합하면 반은 결석이다. 나는 집에서 정확하게 아흔일곱 걸음이면 교문앞이고 다리도 없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는데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차! 우리 집 앞 작은 개울이 생각났다.

집 앞이 한길이라 버스가 다니고 윗마을 아랫마을 갈 때는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다녔지만 비 오는 날은 빗물이 산에서 시작하여 리 동네를 관통하여 그 길을 지나 냇가로 모여들었다. 말하자면 타원형으로 살짝 휘어진 길이라 어지간한 물에는 발목만 적시는 정도였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저학년생들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건너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흘러오다 맨 첫 집인 우리 집까지 내려오는 그곳은 장마가 아닌 다음엔 그리 많은 물이 흐르지 않고 있으나 마나 한 그저 넓은 곡선으로 파인 길이다. 평소에 버스가 다녔으니 대부분 메말라 있기 마련인 도랑이라기에 부족한 그런 길이다.

 어느 해 비가 많이 올 때는 제법 물의 양이 많아서 아버지나 언니 오빠들이 어린 나를 업어서 건네주었고 당연히 발목 위만 차면 나는 업혀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그 길은 집 앞마당과 이어지고 폭이 2m 정도쯤 되는데 그것도 비가 많이 와야 그렇게 되는 곳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씨구 하면서 비오니까 다리 건너 사는 사람은 학교 안 와도 된다 했다며 집 앞 도랑물을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 갔더니 선생님께서 "핸숙이 니는 와 안 왔노? 엎어지면 코 닿는데" 하셔서 집 앞에 물이 많아서 무서워서 못 왔다 하니 어이가 없으신지 한참을 웃으셨다.

어차피 그날 학교 간 친구들도 되돌아왔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학교 안 가는 날이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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