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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장미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6. 7. 6.

* 장  미 *

언니가 헐레벌떡 우리 집으로 들어서며 난리다.

현관 옆 화단에 부스스한 머리로 칙칙하고 목이 늘어난 옷을 입은 여인이 커다란

장미꽃 앞에 서서 전지가위를 들고 꽃을 자르더니 주저앉아 잎도 따고 아예 다듬고 있단다.

언니는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기가 막히다며 나가보란다.

 나는 앞치마를 두른 채로 한걸음에 층계를 뛰어 내려갔더니 이미 그 여인은 사라진 뒤였고 언니에게 들은

인상착의로 대충 누군지 심증이 갔다. 그 여인은 시커먼 닥스훈트를 데리고 다니며 강아지 배변을 위해 유유자적

우리 동을 돌고 가을이면 장미꽃 맞은편 대추나무에 열리는 대추를 사정없이 두들겨 대추를 줍고,

이파리가 낭자한 그곳을 사뿐히 지르밟고 유유히 떠나 경비 아저씨가 중얼거리며 "따 가고 이파리는 쓸고

 가야지!"라며 혀를 끌끌 차게 하던 옆라인의 그 여인임이 틀림없다.

 

 해마다 이 장미는 꽃송이가 내 주먹보다 더 크고 색도 고와 오며가며 다들 눈길을 주고 사진을 찍는 꽃인데 그걸

자기네 집에 꽂아 두겠다고 잘라갔다. 그날 아침에도 장미를 보며 씩 한번 웃고 출근을 했었는데 속상하고 아쉽고

억울했다. 장미가 계속 피고 지길 몇 번이니까 다음에 핀 저 꽃도 잘라갈 거란 애타는

마음에 언니는 종이에 써서 꺾지 말라고 써 붙이란다.

한참을 서서 모두가 좋아하는 꽃인데라며 미안한 마음으로 쓰다듬었다. 

 며칠이 지나자 다른 줄기에서 꽃이 피었지만 가운데서 고고하게 피어있던 꽃송이처럼 크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잘라간 주변에 새롭게 줄기가 올라오고 있다.

아프다. 장미가 아프다.

 

 

 

 

 

(위와 아래 사진은 일주일 지난 후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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