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버스에서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6. 5. 3.

 * 상상 *

 버스를 타다 보면 항상 앉는 자리에 앉게 되는 습관이 생긴다.

 앞에서 타고 뒤에서 내리기 편안한 내리는 문 앞에 앉을 때가 많다.

 서너 명이 같은 장소에서 타고 내리는 동안 그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 티브이를 쳐다보거나 아직은 깨지 않은 상가의 어스레한 내부와,

건물 입구 손잡이에 가로 걸쳐진 조간신문을 보며 새벽 신문 배달을 위해

늦잠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음에 감동한다.

 빵 가게가 생각보다 늦게 문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첫 번째 정류장 앞 건물 청소하시는 분은

7시 30분에 인도까지  쓸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된다.

 

 버스 타고 있는 시간은 고작 7~8분이지만 깨어나는 아침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서 있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사람을 구분하게 된다.

 오늘 아침처럼 낯선 사람이 버스에 탔거나 매일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도 안다.

 2년이 지나니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새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나를 보고 저 아줌마는 학교 앞에서 타고 우리가 내린 후에도 타고 가니 어디까지 가는 걸까?

라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버스가 신호에 걸리자

낯선 사람이 내린다는 신호 벨을 누르고 일찌감치 문앞에 나와 섰다.

그러니까 바로 내 앞인 셈이다. 나는 항상 내리는 문을 눈앞에 두고 앉으니까

끄러미 앞을 보던 내 눈에 그 남자의 신발이 들어 왔다.

 나이키의 검은 선이 회색 신발 옆에 날렵하다.

 신발곽에서 꺼내 바로 신은 듯한, 코에 갖다 대면 새 신발 특유의 고무 냄새가 나겠다 싶다.

그 남자의 신발이 새봄, 새 출발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함과 동시에 신발의 반을 덮은

검정 바지가 반지르르한 새 바지로 보였다.

 딱 봐도 새 바지다. 해서 멀뚱멀뚱하니 눈동자를 위로 조금씩 올려가며 전체를 본다.

바람막이 점퍼 역시 도톰하니 새 옷이다.

 가만 보니 뒤에 맨 가방도 넓고 검은 테두리를 제외한 모든 색은 봄의 철쭉 같은 다홍의 새것이며,

왼손엔 흔히 한의원에서 한약을 담아 주는 크기와 재질의 부직포 남색 가방도 새것이다. 

 게다가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깔끔하여 그 남자의 전체를 말하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고 말끔한 '새것'이다.

 

 엉뚱하게도 난 새것으로 치장한 중년의 그 남자를 보면서 어디서 오길래 이른 아침

이차림으로 주거밀집 지역인 이곳에서 내릴까?

 궁금증과 상상력을 동원했다.

 짐이 가득한 거로 보아 어딘가에 있다 '귀가'하는 모양이며 그 '어딘가'가 아무래도 

교도소가 아닐까.라는 상상. 

 

 영화에서 보면 이른 새벽 높은 담벼락과  큰 규모에 비해 유난히 좁고 긴 회색 문에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오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알뜰히 모은 돈으로 초라한 입성을 반듯하게 새것으로 갈아입고 신으며,

오늘을 위해 자신을 세상 속으로 물과 기름이 아닌 물과 물로 섞여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인상도 평범했던 중년의 그 남자를 어쩌면 멀쩡한 사람을 말도 안되는 상상으로 전과자로

만들었다면 나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아침부터 난 버스에서 짧은 시간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햇살이 빛나고 있어도 썰렁한 날이다. 썰렁한 내 생각처럼......   2016.3.10

 

..................................................................................................................................................

* 오해 *

 내 맘대로 생각한다는 것은 때론 상당히 위험하다.

 심심해서 상상하고 혼자 판단하여 '그럴 것이다'이라는 결정까지 내린 후라면 더 위험하다.

 전혀 일면식 없는 타인을 스쳐 지나면서 맘대로 생각했다면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하지만 조금 알 거나 아주 친하거나 이런 경우는 맘대로 생각하고 생각을 주변에 말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3월 10일 써 둔 글에 버스 안에서 본 그 남자는 스친 '남'이었다.

 그 남자를 보면서 혼자 상상하고 이후 잊었다. 날마다 스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기억하겠나!

한데, 오늘 아침 버스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3월 10일 내린 정류장에서 내리는 남자가 늘 문앞에 앉아 있는 내 눈에 띄었다.

 일주일 전에 신었든 말끔하든 나이키 운동화는 가로줄이 발등에 익숙하게 그어졌고,

배낭도 등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검정 등산 바지의 반짝거림 대신 회색 조의 등산 바지와 패딩 점퍼 대신 봄날에 어울리는 남색의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 옷 또한 모두 새 옷처럼 보였다. 순간 또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아마도 그간 쉬고 있다가 새로운 일터가 생겨 출근하는 것이리라' 다 큰 자식들이 새로운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뜰히 챙겨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순간 일주일 전에 나는 얼마나 위험한 상상을 했던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혼자만의 상상이라도 좋은 쪽으로 먼저 했어야지 라는 다짐이 생기며, 나만의 상상을

남에게 들킨 듯 부끄러워졌다.                               2016.3.16

 ........................................................................................................................................

* 평범 *

 짧은 거리 대여섯 정류장을 지나며 상상을 하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며 출근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나 보다.

 이젠 좋은 쪽으로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 아침에도 '그 남자'가 버스에 타고 앉아 있었다.

 내리는 곳도 같은 곳이었지만 이틀 전과 같은 가방, 같은 옷, 같은 운동화 차림이다.

 몹쓸 상상은 또 나래를 펴고 3월 짝숫날에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어디에서 경비근무를 하시고

아침 일찍 퇴근하는 게 아닐까? 였다.

 그저 잠시 무료한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낸다는 것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부터였는데

이러다 보니 한 사람을 두고 이어지는 상상이 나름 재미있었고 함부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2016.3.18

............................................................................................................................................

* 오늘 *

 비가 오고 바람이 몹시 불어 우산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위의 주인공이신 '그 남자'가 4월과 5월인 오늘도 여전히 하루 건너가며 버스를 탄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아침 풍경 속의 한 모습이다.

 나 역시 아침 풍경 속의 하나였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 지갑  (0) 2016.07.05
몸살  (0) 2016.06.29
백구  (0) 2016.04.28
국화빵 포장마차  (0) 2016.04.06
참 힘들다!  (0)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