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운길산 수종사에서)
신한은행 쪽으로 모퉁이를 돌자 구수한 빵 냄새가 유혹한다.
머뭇거리며 들어서자 우람한 아저씨가 벙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네모난 종이를 가리킨다.
인상이 좋다. 훈남이다.
포장마차 안쪽엔 네모난 종이에 까만 펜으로
정성스런 글씨가 적혀 있다.
종이가 원래부터 누렜는지 하얬는지 쓴 사람만이 알겠다.
기웃거리는 누구에게라도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킨다.
'8개 천 원'
허연 밀가루 반죽은 주전자 엉덩이 곳곳에 자유로이 자리를 잡았다.
찌그러진 주전자가 벌떡 일어나 국화 꽃잎 속으로 부어진다.
"얼마예요?" 들어설 때부터 가리키는 누런 종이를 봤는데
무심결에 또 묻고 말았다. 다시 아저씨 손가락은 뒤를 가리켰다.
국화빵이 익을 동안 둥글고 남루한 포장 마차를 보며
비닐 궁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았지만 푸근한 꿈의 궁전 같다고나 할까.
며칠 지나 다시 들린 비닐 궁전 속.
남녀가 나란히 국화빵을 굽는다.
소문에 의하면 어느 종교 단체에서 교대로 나와 근무하는 거란다.
둘의 대화는 도로 위 차들의 소음을 재우듯 손가락으로 표정으로
가끔 입이 벙긋벙긋 한다.
국화빵이 까만 틀에서 하나둘 벙글며 나온다.
수화를 나누는 둘의 표정. 진지하고 과묵하다.
"3천 원 어치 주세요!"
인사는 나도 모르게 고개만 푹 숙이고 돌아섰다.
하루가 지나고 식탁 위에 식어 빠진 국화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입을 꾹~다물어 본다.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아도 될 말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쏟아 냈던가?
(부엌 창 너머 보이는 목련. 어제 저녁 무렵 모습인데 이제 피려고 준비 중이다.
부엌에 있는 시간이면 수시로 눈맞춤하다 식사 준비가 더뎌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