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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의 느낌...

야반도주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5. 11. 11.

 

 

야반도주 (夜半逃走) 

              이 현 숙

 

도로위를 덜컹거리며 장롱이 달린다

낡은 고무바퀴는 제 허리를 잘라

장롱 허리춤을 돌며 바람을 보내는 길

장롱문이 삐걱 토해내는 옥양목 누런 천조각

늙은 어미의 눈물자국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펄럭이는 붉은 보따리에 총총히 박힌 별무늬 위로

진눈깨비가 날리고

구부러진 트럭 손가락마다 낡은 고무바퀴는

사선으로 얽혔다

 

올곧은 도로위를 구부러진 트럭이 간다

휘어지고 꺾였던 질곡마다 꿈을 접었던 이야기

언제쯤 접었던 꿈을 펼 날이 올까

밤별도 없는 하필이면 그런 날

차가운 바람이 눈물을 씻어도

진눈깨비는 눈가에만 머물고

별자리 찾아 헤매는

떠돌이 삶을 실은 장롱이 달린다

 

지탱하는 것은

늙은 어미와 낡은 고무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까만 밤은 하얀 진눈깨비로 희망을 선물한다


(2017년 근로자문학제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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