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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엄마와 담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12. 12.

아주 오래전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담배를 배웠다.

여든일곱의 엄마는 식사하신 후 수저 놓고 밥상을 물리고 나면 식사한 것도 까무룩 잊어버리시면서

담배는 절대로 잊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라이터를 켜고 세상 가장 평화로운 얼굴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양 입으로 가져가신다.

그리고 입으로 후~ 연기를 뱉어 내신다.

몸에 밴 습관이라 아주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인다.

 

엄마 손에 들려지는 담배 때문에 7남매의 짜증과 일종의 담합까지 있었지만

절대로 지지 않고 담배는 고수하고 계신 우리 엄마.

몇 년 전 우리 집에 잠시 와 계실 때였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엄마의 건강상태에 대해, 점점 잊혀가는

엄마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치매약을 받으며 언니와 나는 사전에 모의 작당을 하여

쪽지에다 '선생님, 담배는 해롭다고 끊으시라고 꼭 좀 말씀해 주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몰래 전하였는데 그때 우리엄마 여든이 넘으셔서인지 비밀스러운 언니와 나의 쪽지를

의사 선생님은 엄마 앞에 펼치시고는 '그냥 담배 피우시게 두세요!'라는 말씀을 하셔서

엄마에게 나쁜 딸들의 모습을 보였다.

병원에서 나오며 민망함에 엄마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단지 내가, 우리가 싫어하기 때문이란 것에

생각이 미치자 언니와 나는 담배를 끊게 하려 했던 마음들을 병원 문 앞에서 내려놓기로 했다.

 

오래전 스무 살 때부터 삼 년에 한 명씩 내리 일곱을 낳고 기르시며 허약한 아버지 뒷바라지에

없는 살림살이에 한시도 허리 펴고 다리 펼 시간이 없으셨던 고단한 엄마였다.

관절이 얼마나 무리하고 닳으셨던지 무릎 통증이 심해 쑥뜸을 자주 뜨다 보니 무릎에 흉터가 몇 개나 있었다.

 

어릴 적 말린 쑥을 돌돌말아 무릎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던 엄마 모습이 기억의 한 곳에 자리한 걸 보면

그때부터였을까? 아버지는 아버지의 둘둘 만 연초를 왜 엄마의 입에 물리셨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밤잠을 설치며 끙끙 앓던 작은 체구의 고단한 엄마에게 아버지는 많이 미안하셨을 거고

많이 안쓰러웠을 거고 또 많이 사랑하는 마음을 약 대신 담배를 물리시며 조금 나아질거다 이거  한 모금이면

통증이 좀 가라앉을 거다 그리하셨을 거다.

그렇게 통증이 올 때마다 한 모금씩 그러다 두 모금 그러다 한 가치에서 한 갑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입에 물린 담배를 보며 자신의 미안함과 무능함, 은근한 사랑까지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엄마는 밭을 매다가 쉴 때도 이고 온 나물 보따리를 내려놓다가도

담배를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배 연기와 함께 후~하고 날리셨는지도 모른다.

장난스레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냐고 자주 물었고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때 잘 죽었지. 느그 아부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면, 해소가 심한데 들앉아 있으면 나만 힘들지."였다.

엄마 스스로 위안인 듯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답이기도 한데 늘 그 끝에는 담배를 빼 물으셨다.

 

 내년이면 담뱃값 인상이라 은근 큰오빠네 계시는 엄마 담배도 신경이 쓰여 일주일 전부터 아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하루에 두 갑씩 사오라며 돈을 쥐여 보내 일종의 '사재기'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에게 하루 두 갑 이상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기에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심부름을 시킨다. 하루는 외할머니 것! 하루는 외삼촌 것!

이 또한 나를 위한 절약이기에 마음 한구석이 편치않다.

 

그까짓 거 얼마라고! 이럴 수도 있지만 여든일곱의 엄마는 예순여덟 큰아들이 은근히 부담스러운 존재이니

엄마의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서다.

엄마가 한 가치를 대여섯 번에 나눠 피다 재떨이에 올려놓고 하시니 큰오빠 눈에는 종일 담배 물고 계시는

것 같아 가끔 투덜거리기도 하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마다 생신 때면 큰오빠 담배, 엄마 담배,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먹거리와 조금의 용돈을 삐죽 드리고 온다.

 

전화로 "오빠! 담배 끊었어요?" 물어보니 아니라며 허허 계면쩍은 웃음이 물린다.

"오빠 담배 뭐 피시더라? 담뱃값도 오르는데 몸 생각도 하고 좀 끊으시지." 하니 한마디로 "안된다"신다.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서글프다.

모시고 있고 싶어도 시어머니가 시골에 혼자 계시고 명절 전에 오셔서 한동안 머물다 가시니

변명 같지만 친정엄마를 모시는 일은 맘같이 되질 않는다.

이러다 후회할 것이 뻔한데 마음만 종종 걸음이지 아무것도 실천할 수 없다.

 

엄마의 담배를 올해도 살 수 있음에 그나마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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