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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감사함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11. 25.

가슴이 싸해졌다.

너와의 몇 줄의 카톡으로

내가 너의 첫사랑이었단 이유로

끝없이 맘 써주는 네게

끝내 말하지 못한 말은 이모티콘으로도 하지 못한다.

어떠한 어려운 부탁이라 우선으로 들어주는 너에게 난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고맙다! 친구!

부탁만 해서 미안하고 신세만 지는 것 같다는 말에

답이 왔다.

"신세는 뭘 내 죽을 때까지 살아만 있어 주라"

찡하게 가슴 한쪽에 박히는 글씨 앞에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곳의 졸업생과 합해진 신입생은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설렘과 기대에

등굣길의 발걸음은 새보다 가볍고 가슴은 오월의 푸른 하늘처럼 드높았다.

두 달이 지나면서 서로 각자의 마을로 놀러 다니고

누가 누구를 소개해주고

어느 동네 누가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다더라.

어느 동네 누가 예쁘다더라.

어느 동네 누구는 못됐다더라.

두루두루 유언비어 통신이 LTE 급으로 퍼져 나가던 시절!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이 동네 저 동네 남학생들은 새로운 여학생을 보기 위해 몰려다녔고,

여학생들은 아닌 듯 최대한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무심한 척 앞만 보고 지나다녔다.

그렇게 남학생은 여학생을 여학생은 남학생을

각자 맘속에 점을 찍고 찍히면서 시작된 중학 시절이었다.

같은 학교 졸업생이었던 남학생은 다른 학교 졸업생 중에 누가 너를 맘에 들어 한다며

전해주기 바빴고 쪽지라도 전해주고 받아오면 학교매점에서

귀한 간식도 얻어먹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성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그중에 한 남학생이었던 W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파다했으나 첫사랑은 깨지는 게 아름답고

더군다나 짝사랑은 자유라 이성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다른 남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W와는 졸업 때까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물론 내가 관심 있던 그 남학생과도 말 한마디 못했다.

 

세월이 흘러 마흔 중반에 처음으로 가 본 대구 동창회에서 나도 모르는 W에 대한

얘기를 친구들은 서둘러 펼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나를 찾았다는데

서울 어느 하늘 아래 있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었다.

그때야 나는 W에게 내가 첫사랑이란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했다.

동창회에서 남자 친구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한다. 내 첫사랑도 너였다며 여기저기서 말을 한다.

나이 먹더니 거짓말만 늘고 농담만 늘어 다들 웃기지도 않는다.

 W가 큰소리로 친구들 앞에서

" H는 내 첫사랑이고 동창회도 처음 왔으니 내가 옆에 앉을 거니까 아무도 앉지 마라"고 외쳤다.

그 시절 내가 관심 가졌던 친구가 멀찌감치 있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인사만 겨우 했다.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풋풋한 우리들의 푸른 시절이었구나 싶다.

동창회장이 된 W에게 친구들 경조사 때마다 연락이 오면 부조금을 전해달라게 되고

서먹한 가운데 반겨주는 그 친구에게 작은 부탁이라도 늘 미안하게 여겨졌다.

어제도 그랬다. 그 친구 직업에서 알 수 있는 뭔가를 부탁했는데 아주 미안했다.

그 친구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 맘에 걸려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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