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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내 친구 정희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7. 25.

 

시골 깡촌에서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된 나는 그나마 60명 중에

20명 남짓 가게 된 중학교 생활이 들뜨고 설레어 입학과 동시에 천방지축

발을 땅에 딛지 않고 살았을 정도였다.

우리집에서 버스를 타고 40여분이 걸리는 그곳까지 구비구비 휘돌아 가는 동안에는

처음보는 다른동네 선배 언니 오빠들과 다른학교 졸업생이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된 서먹한 남녀친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태우고는 덜컹거리며 흙길을 내달렸다.

 

그렇게 시작된 중학교는  남학생반 하나 여학생반 하나 이렇게 두 반이었는데

그 작은 중학교에서 동명이인 '이정희'가 둘이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도일 정희' '용산 정희' 이렇게 부르고 있었고 그 둘은 초등학교도

함께 졸업한 친구였는데 그 소읍을 가운데 두고 주변에서 모인 친구들은 낯설음을 처음

깨달음과 동시에  여드름이 돋아나는 남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관심이 시작되었던 참으로 풋풋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 용산정희는 활발하고 읍내에서 최고로 큰 식당집 딸이었고, 도일정희는 말할 수 없이

얌전하면서도 공부를 썩 잘하는 친구였었다.

용산정희는 어느날 우리초등학교에서 온 여학생중에 네가 제일 이쁘다며 늘 내게 말을 걸어주더니

종례시간이 지나고 우리집 가는 버스가 오기전까지는 나를 붙들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는 정희엄마의 짜증도 감내할 만큼의 맛있는 음식으로 매수(?)하여 한동안 단짝이 되었다.

 

그후로 다시 조금더 큰 도시인 군청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중 몇명만 같은 여고를 가고 몇몇은 대구로 또 몇몇은 일터로 가게 되어

두 정희와도 흐지부지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10년전 즈음에 친정 나들이 길에 수몰되어 버린 중학교 댐 주변에 횟집이 여럿 들어 서 있어 가족끼리

회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용산정희가 어머니와 같이 횟집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용산정희 엄마에게 

철없던 중학생 시절 넉넉한 인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의 중학생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였는데

또 어찌어찌 살다보니 자주 연락을 못하고 말았다.

 

 

지난 달 중학교 동창회 총무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고였다. 이정희 모친 별세.

단걸음에 달려가고 싶었던 건 마음뿐이었고 친구들이 모여서 나와 통화를

하겠다며 이친구 저친구 몇과 통화를 하며 나는 내 일상속에 앉아 있었다.

미안한 마음은 어릴적 가서 얻어먹은 밥이 얼마며 감사함을 기억한다면 가서 잘 가시라고 절이라도 해야 되는것을

그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거리가 멀다는 이유와 아프다는 이유로 작은 조의금만 전달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문자가 날아왔다

 '친구야!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 염려해준 덕분에 장례를  무사히 잘 치뤘다.

 멀리서 이렇게 위로해 주어 뭐라해야 될지......그저 많이 정말 고맙구나!

 너 옛날 웃던 모습이 선하다. 항상 건강하고 좋은 행운이 있길 기원할게. 정희.'

난 답장을 썼다.

 '오래간만이야 ! 기회되면 얼굴도 보자.  너무 울지말고 힘내고!

 나역시 얌전하고 공부 잘하던 네 모습이 선한데 어른 된 너를 떠올릴 수가 없어. 보고싶다.

 잘 지내고 행복+건강하기를 바란다!'

다시 고마워~, 잘자~, 너도.....  이랬다.

 

사실 조의금을 총무에게 전달해 달라며 입금시킨 후에 문상 간 친구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바꿔주며

얘기하던 끝에 나는 그 이정희가 용산정희가 아닌 도일정희란 걸 뒤늦게 알고는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중학교 졸업후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하면서 약간의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 도일정희는  소식도 모르던 내가 조의금을 보낸데 대해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나를 떠올리고

문자까지 길게 보내왔다. 그 문자를 받는 순간 어찌나 미안하고 민망했던지......

 

작은 조의금으로 잊었던 친구를 한 명 다시 찾았고 조의금을 정말 잘 보냈단 생각과 함께

친구가 정말 고마운 마음을 알려주어 잠시나마 옹졸했던 내 마음이 너무 창피하고 미안했다.

얌전하던 도일정희 친구. 내 마음 용서해주기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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