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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래층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5. 28.

어제저녁 친구 부부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집 앞을 나서다 오래간만에

현관 앞에서 아래층 '그녀'를 만나 얼른 인사를 하는데

당최 나를 못 알아보고는 "어~어~. 아, 네~~!" 한다.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엔 얼굴을 뜯어고치거나 요즘 흔히들 한다는

필러나 보톡스도 모르고 그저 직장 다니며 머리 손질을 쉽게 하려고

긴 머리 단발로 자른 것뿐이고, 약간의 뱃살을 만들었을 뿐인데.?

하며 생긋 웃어 보였다.

2층 사는 나와 1층 사는 그녀는 2011년 이사 온 후로

아침 출근길에 간간이 마주쳐서 그녀는 버스를 타고 나는 회사 차를 타고 출근하였는데

10 m 간격을 두고 집 앞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 몇 번 봐 오다가 어느 날 아래층에서 나오는 그와

2층 계단을 콩콩 내려가던 내가 눈이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주 만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시간 날 때 차나 한잔 하자며 말로만

스치고 서로 직장생활 하느라 무심히 3년이 지나 4년째 접어들었고

작년 5월 휴직을 한 후로는 이번 주말이면 1년인데 근 1년을 못 봤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녀는 어제 퇴근길이었고 나는 퇴근을 일찍 한 덕에 1년만에 마주쳤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안 그래도 마음이 영 찜찜해서 보고 싶었다며 작년 여름 베란다 물청소 할 때

소리 지른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미안하단 말을 못해서 지금 한단다.

순간 무슨 소린가 생각하니 작년 여름, 비가 많이 오던 날

2층에서 유난 떠느라 베란다 창틀에다 호수를 대놓고 묵은 먼지를 빗자루로 북북 쓸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물청소 하지 마세요. 창문 열어놔서 물 들어와요!"라는 소리가 들려

"미안해요! 비가 와서 문 닫은 줄 알았네요"라며 베란다 묵은 때를 벗기다 말고

하나씩 일일이 걸레로 닦아 내자니 시커먼 먼지가 어마어마하게 나와

대충 하고 말았던 생각이 났다.

사실 그때 내가 정말 미안해서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머리가 나빠선지 해가 바뀌고는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래층의 그녀는 그래 놓고도 마음이 편칠 않았다며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는

정말 미안했다고 붙잡고 놓질 않는다.

내가 미안했다고 오래전 일인데 아직 기억하고 있었냐며 서로 미안한 마음

주거니 받거니하다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친구 부부 만나러 가는 길에 주변에는 좋은 사람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얼굴에 웃음이 생긴다는 건, 결코 큰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늘 아침 카카오스토리에는 우리 딸이 올린 책 속의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삶의 의미!

미소.

사랑스러운 말.

사소한 착한 일.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라고 나지막이 일러준다.

미소, 사랑스러운 말, 사소한 착한 일이면 충분하다. 그 말이 맞았다.

어느샌가 밖에 나갈 때면 미소 지었고, 감사했고, 칭찬했고....

 

내용을 가만 보니 '4-3' 책에 나온 건데 딸의 마음에 많이 와 닿았던가 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이런 내용으로 인해 키워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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