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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내겐 슬픈 이야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3. 31.

 퇴근길 언제부터인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주 정확하게

왼팔을 뻗어 우편함을 연다.

겉으로 하얗게 걸쳐져 있지 않은 경우 대부분 헛손질이다.

 아주 가끔은 스스로 미끄러져 그 안에 조용히 머무는 우편물도 있고 대부분은

아파트 시세가 얼마이고 대출 가능 금액은 얼마이며 이자는 얼마라는 손바닥만 한

전단이 민망한 건 아는지 찍소리 못하고 누워 있을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늘 거기에 손을 뻗어 뚜껑을 열어본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어 있는 날에는 룰루랄라 층계를 오르는 발걸음은

사뿐사뿐 마치 2층까지 살포시 날아오르기라도 하는 듯 현관으로 들어선다.

 

 그랬다. 금요일 퇴근길에 무심한 듯 습관적인 행동으로 우편함을 열었는데 거기엔

뜻밖에도 군사우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봉투를 꺼내 들면서 갑자기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물고는 군대 가서 보내온 편지라고는

달랑 한 통이었는데 이병도 일병도 아니 상병 단지도 석 달이 되었는데 이제야

철이 들었는가? 어찌 내게 편지를 다 보냈을까? 하면서

잔뜩 설레어 정말 나비가 날 듯 사뿐히 집으로 가 분위기를 잡았다.

 이왕이면 차분히 이 설렘을 만끽하면서 조용히 최대한의 감정을 잡으며

아들의 커진 마음을 고스란히 내게 담으리라 하면서.

 

 봉투에 글씨도 어쩜 이렇게 또박또박 이쁘게 잘 썼는지 처음 입대하고 보내

편지를 보고 글씨를 못 써서 펜글씨 교본을 사서 보내겠다고 했더니 펄쩍 뛰며

잘 쓸 테니까 그러지 말라고 극구 말리기에 사 보내진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정성껏 엄마 이름을 이쁘게 썼나 보다! 하고는 봉투를 개봉하였다.

 

 조바심을 억누르며 한껏 부푼 내 눈에 펼쳐진 편지에는

 "친애하는 천호대대 본부중대 장병 가족 여러분!"이란 20호쯤 되는 큰 글씨의 제목과

중대장의 사진이 오른쪽에 떡하니 찍혀 있는 쉽게 말해 단체 편지였다.

 읽어보니 보이스피싱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며 아드님은 최고의 부대원이고

강한 대한의 아들로 만들어서 부모님의 품에 안겨주겠다는 실로 풋풋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첫 장이 끝나고 두 번 째 장은 설마 아들이 몇 자 적었겠지? 하며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로 넘겼더니 글쎄 아들 글씨는 눈 씻고 봐도 단 한 글자도 없었다.

생활 장기 복무에 관한 안내와 6.25 유가족을 찾는다는 안내문과 간부들 전화번호만

적혀있었다.

 

 밀려오는 실망감에 내가 뭘 기대했는지 자신이 어이없었다.

 군 생활 1년 3개월 동안 달랑 한 통의 편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입대 후 돌아온 옷 보따리에도 성의 없이

휙휙 몇 자 적은 편지도 아닌 쪽지가 다였는데, 철없는 아들이 상병 달고 갑자기

철들리가 만무한데 그래 내가 바보다. 하고 편지를 봉투에 담아 화장대에 휙 던져 버렸다.

 그 순간 어찌나 허무하고 실망스러웠는지!

 

 휴일에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편지를 받고 엄마가

정말 기분 좋고 설레었는데 실망이었다고 말하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엄마! 나 민희한테도 편지 안 하는데 엄마한테 왜 하겠어?" 이런다.

 민희가 영순위가 된 것을 재확인하며 아들놈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걸 나 스스로 각인시켰다.

순간 판단력도 흐려지고 뜬금없는 편지 한 통으로 설레고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이젠 이웃사촌도 아니고 뭐 사돈에 팔촌인지 그럴 텐데 괜스레 설레기만 했다.

 정말 내겐 슬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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