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친정식구들이 모일 때마다 어릴적 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얼마전 언니네 조카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집에서 뒤풀이를 할 때에도 어김없이 어린시절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첩첩산중의 시골에서 그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고.. ㅋㅋ
어릴적부터 씻고 닦는걸 좋아해서 얼굴이 햇볕에 바알갛게 익었다는 이야기며
엄마가 아끼는 검은 빨랫비누를 하루종일 걸레를 빠느라 녹여버려서 엄마로부터 야단을 맞았다는 이야기,
언니들이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아버지 육촌형님은 아침마다 나를 보려고 우리집으로 오셨다는 이야기..
서울에 있는 큰언니를 만나러 오시는 아버진 아직도 어린 나를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천리길을 다니셨다는 이야기,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번호판을 외워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은 이야기들..
결국 어릴적 지나친 사랑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사랑까지 미리 가불해 버림으로 힘이든 세월이 있었노라는 결론까지.
아직도 친정에서는 어리광을 부리고싶은 7남매의 막내인 제가 어제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맞이하는 생일이 뭐 특별한 건 아니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습니다.
작년부터 어깨가 아프고 팔이 아프더니 결국 5월말로 퇴사를 하고 집에서 집중적으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동네 병원에서 조금 더 큰 병원으로, 한약방에서 침으로 부황으로 한약으로.
오늘 괜찮은듯 하던 팔이 내일 아침에 어김없이 아프고, 밤이면 잠을 잘 수 없을만치 아팠습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9월 2일에 구리에 있는 굿 병원으로 갔습니다.
젊고 유능한 전문의 의사는 팔을 들어보라는 말 한마디가 끝나자 바로 입원수속을 하라고 했고 더 이상의 고통도 싫고 주변에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싫어서 입원수속을 마쳤습니다.
3일에 준비를 하고 4일에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검사결과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아서 수혈 후에 수술을 해야한다고..
결국 수요일에 남의 피 2봉지를 맞았는데, 영 기분이 찜찜하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5일 오후 1시30분에 시작한 수술은 다섯시가 되어서야 끝이났고 8시간동안 물도 마시지 말고 잠도 자지 말아야 한다는 의사의 명령에 누운 자세로 버티고 또 버티었습니다.
5일 밤은 셋째 언니가 와서 병원 보조의자에서, 저는 침대에서 둘이서 비록 쪽잠이지만 달콤하고 깊게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이 내 생일임을 기억하고 언니에게 생일이라고 했더니 부지런한 언니가 케잌을 준비했습니다.
생일축하노래 대신 병실에 계시는 환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촛불만 켜고는 조용히 껐습니다.
인생, 참 그렇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생일 촛불을 끄기도 하고, 양팔을 저당 잡힌 채 꼼짝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전히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추석전까지는 병원신세를 져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를 하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가을바람속에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에, 건강한 어깨와 팔을 흔들며 다시금 씩씩한 모습으로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세월앞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환절기입니다.
건강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추신 ; 이 글은 여전히 곁에서 저의 모든걸 알고 있는 셋째언니가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