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사 개들..
지난여름 만났던 곰 같은 개 이름하여 태풍이
계곡에 만들어진 하트
백봉산
오랫만에 동생과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다.
겨우내내 산을 멀리하던 동생은 함께가자는 말에 거절도 딱 부러지게 못하고, 그렇다고 명쾌하게 '좋다'라는 맏로 못하고
식어가는 커피의 미적지근함 같은 대답으로 '알았다'고 하면서도 커피잔 주변에 흘린 프림처럼 질척거리며 이유를 가져다댄다.
'아이젠이 없느니, 산에 간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느니, 겨우내 운동을 못해서 다리가 풀렸다느니..' 등등
여유분의 아이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쉬운 코스로 다녀오자는 내 말에 울며겨자 먹기로 오케이..
파릇한 새싹이 피어나고 하늘거리는 잎새가 돋아나는 봄 산과 이파리가 점점 자라서 울울창창한 잎을 만들며 시원한 그늘까지 제공하는 여름 산, 초록이 짙어 단풍이 들어 오색빛의 화려함이 가득한 가을 산, 침묵과 고요가 가득하고 때로 하얀 눈이 눈을 부시게 하는 겨울 산 중에서 나는 봄 산을 가장 좋아한다.
겨울 산은 눈과 얼음과 그것도 부족하여 세찬 바람과 추위탓에 몸을 움추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산을 오르다보면 겨울 산이 주는 특별한 맛에 스스로 느끼지 못할 속도로 겨울 산에 빠져버리고 만다.
텅 빈 적막함과 적막속에 흐르는 고요함, 그리고 환하게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들이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다시금 재정비할 힘과 기회를 가져다준다.
동생과 하는 산행은 나에겐 늘 부족하기만 하지만 버벅거리는 동생은 또한 늘 힘겹다.
아이젠 중 '예전의 무거운 것을 동생에게 빌려주고 지난해에 산 가벼운 것은 당신이 신으라'는 전날저녁의 남편의 얼굴이 마누라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어쩐지 자기중심적이고 처제를 배려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미운 생각마져 든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동생에게 아이젠을 건네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하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입구에서부터 동생이 힘이든다고 한다. 에고~
중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귤과 떡을 먹고 새로운 힘으로 나선 산행길,
백봉산 정상에서 평내로 가자는 말에 힘이드니 중간쯤만 가자던 동생이 임도로 가면 평내로 갈 수 있다고 하길래 묘적사로 향했다.
급경사가 많은 묘적사 계곡길을 피하고 능선이 완만한 묘적사로 들어서니 쌓인 눈과 우뚝우뚝 서 있는 겨울나무가 멋지다.
묘적사에 들러 묘적사에시 키우는 개들을 보는데 지난여름 우리자매를 소스라치게 한 개가 그새 덩치가 더 커졌다.
무섭지 않다고 설명하는 스님에게 지난여름 이야기를 하고 개의 이름이 태풍이란 사실도 알았다.
묘적사를 지나 임도를 걸서어 평내로 오는 길 중에서 역시 지난가을에 밤을 줍다 벌에 쏘인 길을 찾아들었다.
어느 것이 밤나무인지, 어느 것이 굴참나무인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홀랑 벗은 나무들을 지나니 어느새 익숙한 곳까지 왔다.
좌측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우측으로 들어선 순간, 새로운 길도 가보자는 생각에 쉽게 들어선 그 길이 우리를 지치게 할 줄이야...
눈이 길을 덮어 사람의 발자국만 찾아서 걷는 길은 방향도 목적지도 이미 잃은 듯하다.
아무리 걸어도 익숙한 곳은 보이지 않고 뭔가 잘못되어가는 분명한 생각만이 또렷하다.
한참을 걸어 사람들이 많이 다닌 곳에 다달으니 안심은 되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알 수가 없다.
평소에도 길치인 내가 눈 덮인 산에서 방향감각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중의 무리임이 틀림없다.
대충 어디쯤인것 같아서 길을 따라가는데 또 낯설다.
오던 길을 돌아서 반대로 한참을 내려가다가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수리봉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제서야 여기가 어디쯤인지, 어느 곳으로 가야 평내가 나오는지 분별이 된다.
오던 길을 돌아가자니 더 힘이드는 것은 당연한 일..
헉헉대며 따라오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집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닌가. ㅋㅋ
백봉산 정상에서 평내로 내려오면 3시간 반이면 충분할 것을, 편안한 산행을 위하여 꾀를 부리다 겨울 산을 6시간이나 걸었으니..
집에오니 무릎쪽이 잘근잘근하지만 큰 무리는 아닌듯 한데,
한 블럭 떨어진 동생은 온 몸이 아파서 잠도 못자고 다음날까지 끙끙거렸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다.
사무실에서 마주보이는 백봉산엔 하얀 눈이 가득하다.
쌓인 눈 아래 어디쯤에서 봄물이 세수를 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