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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후회는 늘 뒤늦은 것임을.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9. 6. 23.

 

 여고 시절 운동회 날이었다.

반 친구들과 함께 탈춤과 캉캉 춰야 하고 달리기도 해야 하고

제법 큰 축제인 운동회라 시골에서 엄마도 바쁜 농사일을 미루고 학교에 오셨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쪽 찐 머리 단정히 오셨을 때

교실에선 탈춤 바지저고리를 입고 갈래로 땋은 머리를 다시

하나로 땋아 내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읍내에 있는 학교여서 그 시절에도 친구들의 엄마는 파마머리에

대부분 양장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리고 화장까지 하고 오셨다.

 우리 엄마는 눈에 띄게 작은 키에 쪽 찐 머리라 촌스럽다는 생각에 먼 길 오신

엄마에게 생 짜증을 부리며 머리 손질을 도와주겠다는 엄마에게 내가 한다고 바락바락 우기며

엄마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고 있었다.

 

 가끔 아들딸이 시내에 같이 가자면 내 입성을 보고 옷 갈아입고 가자든가

화장을 하라고 한다. 딸은 목욕탕 갈 때도 가다가 친구들 마주칠지

모르니까 이쁘게 하고 가자며 머리 감고 가자고 한 적 있었다.

 그럴 때면 늘 나도 그맘때 그랬었지!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좀 컸다고 딸은 엄마 그대로도 이쁘다며 추세우기도 하고

삼십 대 같아! 이러며 놀리기도 한다.

 사십 대니까 요즘은 당연히 삼십 대로 보여야 하는 거라 하니 훤히 보이는

거짓말로 이젠 이십 대야! 하며 놀려댄다.

 

 우리 엄마에게 동창회 가면서 치마와 스웨터를 사 들고 가서는

갈아 입혀 드리고 엄마 남자친구 생기겠다. 우리 엄마 너무 곱다며

놀려대던 내 모습이 내 딸에게서 보였다.

 

 뒤늦은 후회를 않기 위해 말 한마디라도 살갑고 다정하게

엄마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려 잠시라도 애쓰는 요즘은

예전 냉정하게 대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 내 속의 나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하면 다 잊어버렸다며 생각도 안 난다 하신다.

내리사랑이어서 모든 걸 이해하고 서운하다는 생각조차 않으셨으리라.

 

 그 날 운동회를 마치고 자취방에 오면서 엄마에게 또 무슨 말을 했을까?
도무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이제야 가끔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그때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우셨는지 이제야 알아가는데

가실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더위가 시작되면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