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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모전 녀전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9. 3. 23.

'넌 누굴닮아서 오지랖이 그리 넓으니?"

우리 큰언니가 날보고 자주 하는 말이다.

주제에 맞지 않게 막내이면서 위로 언니나 오빠들 생각까지

가끔은  다른 식구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오지랖을 오천평씩 만평씩 넓히니 하는 말이다.

 

게다가 또 자주 들은 말은

'제발 우유 하고 부단이 좀 버려라'

우리 둘째언니가 날보고 자주 한 말이다.

여린성격탓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거절도 잘 못하고

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처녀때 정말 많이 듣던 그말이다.

우유부단한 성격때문에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줌마의 힘과 세상의 험난한 파도에 힘입어

오지랖도 많이 좁히려 애쓰고, 사실 넓기만 했지 실속적으로 힘이 되거나

도움이 많이 되지도 못했기에 자연 다섯평 정도로 줄었다.

 

우유부단한 성격은 역시 살다보니 많이 개조되어 가끔 싫다는 의사표현도

하게 되었고 아이들 키우다보니 조금씩 내성이 생겨 강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다 버리진 못해서인지  아들녀석은 자꾸 조르면 엄마는 마음이 약해서

부탁을 들어줄거라 나쁜 생각을 한다.

 

점심시간에 거래처에서 납품할 물건을 싣고 오는 경우가 잦다.

점심을 펼쳤으니 그 앞에서 어찌 식사하고 가시란 말을 안할 수가 있을까.

앞뒤없이 식사하고 가시라며 여분의 밥을 내밀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궁시렁 거린다. 뭘부르느냐고 가서 편하게 드시게

그냥 보내라지만 밥상 앞에서 차마 그러질 못해서 수저를 챙겨 들고 간다.

국을 푸다보면 모자라 난 괜찮다며 안먹을때도 가끔있으니..

 

울엄마의 오지랖을 조금 닮은게 맞다는 생각을 저녁네 엄마와

통화하다가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라면서 길갓집이었던 우리는 식구들과만 밥먹은적이 거의 없었다.

지나가는 건넛마을 아지매나 뒷동네 사는 외삼촌이나 개울건너 사는

정씨 아저씨나 가끔씩은 동냥그릇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으니...

우리엄마는 그들에게 무조건 밥을 먹였다.

 

지나가면 부르고 못본체하지를 못하였기에 아버지와 가끔 다투기도 하셨다.

아버지역시 엄마의 오지랖이 넓다며 튀방을 주지만 엄마는 안그러겠다

대답뿐이지 한끼만 지나면 또 불러서 먹였다.

 

언니나 나는 지나가다 와서 같이 밥상에 앉은 그들중 간혹은 더러워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넉넉지 못한 먹거리앞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울엄마는 슬그머니 당신 수저를 내려놓고 입맛이 없다 하셨다.

원래 엄마는 조금만 먹어도 배고프지 않구나! 생각했다.

 

올케가 시집와서 생긴 큰 불만중에 하나가 식구끼리만 밥먹을 수 없는거였다.

 

지금도 가족이 모이면 그이야기를 자주 한다.

먹을게 있거나 없거나 무조건 밥먹고 가라고 붙잡는 엄마의 오지랖 앞에

언니 오빠 모두가 불만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출가하여 가끔 찾는 친정에는 여전히 객식구와 함께 밥먹을 때가

더 많았다. 얼마전 다녀온 친정나들이에도 여전히 뒷집아지매가 함께였고

커피는 180개 짜리를 방 한구석에 턱하니 자리해 두고 커피포트까지

항상 준비해서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 잔씩 권한다.

잠이 잘 안온다는 엄마에게 오후에는 마시지 마세요 !했더니

상관없다며 밤에도 한 잔씩 하신단다.

180개짜리 커피도 금방 없어진다는 울엄마!

가끔 언니들이 사서 보내기도 하지만 엄마의 오지랖 앞에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닌 것이다.

 

오늘도 울엄마의 방에는 몇몇 친구분이 함께이셨단다.

그중 젊은 사람이 설거지를 해주고 가셨다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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