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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소풍, 그리고 달걀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8. 11. 27.

 큰(?) 도시 읍내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던 그 시절,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산골짜기 소녀였기에 달걀은 모두

집에서 키운 닭들이 낳는것인줄 알고 먹었다.

그랬던 내게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여고 첫소풍을 가던 오월초. 그날 우린 설레임으로 중무장을 하고

학교에서 한시간정도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절 '죽림사'로 향했다.

가는길에 길게뻗은 양계장과 진동하는 냄새를 맡으며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마을이 우리학교에서 좀 떨어진 담벼락에서 건너다 보이는 들판에 자리한

큰 동네였다는것도 그날 알게 되었다.

죽림사로 가려면 그 동네 가운데를 어쩔수 없이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그동네가 내기억으로는 엄청나게 커서 가는내내 몸을 움츠리고 코를 막고

한참을 지나야했다. 

 

그당시엔 예민한 여고생들이라 별스럽게 유난을 떨기도 할만한 냄새였었다.

소풍을 가고 오는 길 내내 그곳을 지나치게 되면서 그곳이 나환자촌인것도

알게 되었고 그당시 이상한 소문들로 인해 나환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것도 사실이다.

 

그후로 우리 읍내에 생산되는 달걀은 모두가 그동네에서 나왔을거라는

생각에 다시는 달걀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얼마나 못된 성질이고 무식한 처사였는지 어른이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생각해도 고개숙여지고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땐 정말 무서웠고

이상한 생각만했었다.

 

여고를 졸업할때까지 안먹던 달걀을 서울로 유학오면서 다시 먹게 되었는데

전염병도 아니고 그분들이 생계를 위해 양계장을 운영하였을텐데

왜그리 못되고 이해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었나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동네에 살던 내뒤에 앉았던 친구의 달걀프라이며 달걀말이며

그친구의 반찬은 아예 먹지도 않았으니 그친구가 얼마나 나를 미워했을까?

 

어른이 되면서 지나온날을 돌아보면 그시절의 그행동이 가장 부끄럽고

죄송한 생각이 든다.

 

요즘은 찜, 말이, 오무라이스, 스크램블.... 여러 음식에 많이도 먹는게 달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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