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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여름날 비를 보면 떠오르는 사건!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8. 7. 25.

 8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

1학기 종강후 2학기 등록금은 내손으로 벌어서

보태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이마트 정도의 갑자기 동네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이 생겼는데 성북구 석관2동 시장앞 도로변에

자리한 곳이었습니다.

한달 월급이 85,000 원이라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드디어 일주일쯤 후면 한달이 되고 난생처름 벌어보는 돈이라

들뜨기도 하고 자신이 대견해질 무렵이었지요.

 

50대 중반이나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매장에

오셨습니다.

깎듯이 인사를 하고 뭘찾으시냐고 했더니, 사이다 한 박스와

콜라 한 박스를 배달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위치는 석관 우체국 옆 골목으로 장위시장방향으로 가다가 4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신세계주산학원'이 있다며 그리로 배달해 달라셨지요.

그래서 같은 아르바이트생인 남자직원에게 커다란 자전거에 싣고

아주머니를 따라 가라고 얘기까지 했는데.

아주머니께서 돈은 후불이라며 집에가서 수표로 지불할테니 잔돈은

먼저 달랍디다.

그래서 잔돈으로 86,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직원에게 꼭 수표를 받아서

뒤에 싸인까지 받아오라고 했지요.

오늘처럼 비가 조금씩 내리다가 말다가 그런날이었지요.

...................................................................................................

한참이 지나도 배달간 직원은 오지를 않고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장위동 골목으로 뛰어갔습니다.

가면서 마주친 직원은 비를 맞은 상태로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앞에 가다가 중간쯤에서 잠시 볼일이 있으니 저쪽 방향을

가르치며 쭉~ 가면 2층에 학원이 있으니 먼저 가 있으라 했다네요.

그래서 그 직원은 하염없이 가면서 아무리 찾고 물어봐도 그 주변에

'신세계주산학원'은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 길에서 찾아헤매며 학원과 아주머니를 찾았지만 흔적도 없었구요.

다시 일터로 돌아온 나는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실망으로 울음을 꾸역꾸역 삼켰답니다.

슈퍼마켓 점장님과 사장님은 제탓이라며 알아서 하라 했구요.

언니들이 와서 월급탄걸로 채워드린다는 약속을 하였고...

한달을 채운후 모자라는 몇천원은 봐주겠다는 듯 찜찜한 표정의 사장님과

인사를 했습니다.

원망스러움과 억울함과 속상함을 어디에 비교할 수도 없을정도였지요.

집으로 돌아와서 엉엉 울며 보냈던 아픈 기억은

지금처럼 비내리는 여름날 해마다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아줌마는 지금도 살아있을까?  그 돈으로 잘살았을까?

있게 생긴 자그마한 그 아줌마의 핑크빛 도는 우산과 하얀 백가방이

반쯤 굽슬하게 말아졌던 퍼머머리가 ,맘씨 좋아 보이던 푼푼한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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