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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퇴근길에 아들을 만나면.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8. 6. 3.

 

퇴근길에 비도 살금살금 내리고

고3이 된 딸아이는 고2 때 줄인 교복이 적어

아침마다 낑낑대다 기어이 부탁을 한다.

교복 블라우스 하나 사 달라고.

작년에 제발 그냥 입으라고 했는데 기어코 줄이더니!

 

교복 판매점에서 하나를  만 원에 샀다.

그나마  올해 신입생부터 교복 디자인이 바뀌어 싸게 구입해서

속으로 웃으며 나오다 딱! 걸렸다.

 

문 밖에서 남학생 세 명이 기웃댔는데

안면이 많은 걸로 보니 한 명은 내 아들 녀석이다.

나머지 두 명도 백 번 정도 본 아들 녀석 친구들이다.

"엄마! 맛있는 거 사 주라~ "

집이 코 앞인데 집 가서 먹자고 하니 친구들도 있으니

한 번만 사 달란다.

다른 친구 엄마들은 길에서 만나면 무조건 사 주신단다.

 

"뭐 먹고 싶은데?"(싼 걸로 말 해주길 간절히 바래며)

"제육볶음"

(순간 머릿속에 계산은 1인분에 사오천 원일 텐데, 만오천 원씩이나!)

"그냥 집 가서 먹자, 집에 국 끓여 놓은 것도 있고 돈가스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엄마랑 같이 가서 먹지."

"제육볶음 비쌀 걸? 그냥 니네 싼 걸로 먹어"

(지난번 친구 한 명 생일날 선물도 없이 가서 얻어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

왔는데 한 번 사 줘야겠다. 쩝!)

"만 원 줄께 알아서 해"

"앗싸!"

 (교복 블라우스랑 안 써도 될 돈 이만 원 나갔다. 아까워라!)

애들이 김밥천국으로 들어가고 나서 슬쩍 문 앞에 적힌 가격표를 쫙

빠른 눈길로 훑어 내렸다.

 제육볶음 3,000원이다. (아휴, 다행이네. 모자랄까 봐 은근 걱정했는데)

 

 빨리 먹고 오라 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참 찜찜했다.

그냥 시원하게 사 주고 올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고 아들 친구들이

어른이 너무 짜다고 흉볼 지도 모르는데. 아들 체면도 있고.

아들 친구한테 밥 한 끼 시원하게 먼저 사 준다고 하지도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어쩜 이리 나날이 더 짠순이가 되어 가는지 부끄러웠다.

 

 앞으론 길거리에서 아들 녀석을 만나면 차라리 고개를 돌려야 하나?

 

"아들아! 미안타.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대신 친구들 우리 집에

많이 데려왔잖아. 집에서 엄마가 김치찌개랑 밑반찬 맛깔스럽게 해서

먹은 적도 많아 친구들이 엄마를 좋아하잖아!

밖에서 사 먹는 건 왠지 아까우니 이해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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