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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오답정리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8. 2. 26.

 

초등학교 2~3 학년때였다.

옆집에 사는 화자언니는 나보다 한학년이 높았지만

우리 둘의 집은 동네 초입이라 뒷동네로 들어가서 노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학년과 바로 위 학년에서는 여학생이 우리 둘

빼고는 한 명이 있었기에 난 우리 언니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가끔씩 화자언니와 놀았다.

화자언니의 배경은 내 눈엔 선망의 대상이었고 부러움이었다.

구멍가게와 함께 어른손님들의 모임 장소였기에 항상 북적거렸고

먹을것이 많았었다.

손이 컸던 화자언니는 심심할때면 나를 불러 과자를 주고 놀았다.

우리 큰오빠는 화자언니네 집에 놀러가지를 못하게 하였다.

만약에 놀다 들키기라도 하면 매맞기도 하였기에 우린 가끔 큰오빠의

눈을 피해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날은 아기를 어디로 낳는가? 하는 문제로 둘이 심하게 다투기까지

하였다.

울엄마는 분명히 내가 물었을때 배꼽으로 낳는다고 하셨다.

화자언니 엄마는  아니라고 하셨단다.

서로 울엄마 말이 맞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각자 주장을 포기못한체

집으로 갔다.

내생각엔 틀림없이 불룩하던 뱃속의 아기는 쭈글쭈글한

배꼽이 늘어나면서 그곳에서 쑥~ 나오는게 당연한 이치였다. 당시 생각으로는! 

그래서 다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맞다고 하셨다.

화자언니의 주장에 난 모르면서 아는체한다고 아무리 한학년위였지만

그후로 무시하였다.

 

그 일이 잊혀지고 5학년 겨울방학때였다.

건넛마을 사는 아주머니께서 우리 윗동네에 있는 교회에 갔다

건넛마을로 가는 사이에 길에서 자꾸만 배를 쓸어안고 주저주저 하며

아프다고 우리집을 돌아다 보고 서있었다.

그 아주머니 배는 남산만하였고 순간 '아기가 나오겠구나' 하며

우리 엄마는 뛰어가서 그 아주머니를 우리방에 뉘였다.

 

그때 번쩍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은 주장확인이었다.

화자언니와의 찜찜한 답을 이 기회에 확실히 알고 꼭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프다는 아주머니와 엄마 곁에서 모르는체 앉아있었다.

엄마는 자꾸만 밖에 나가라고 하셨다. 남의 속도 모르고......

난 이미 5학년이 되었고 엄연한 여자였기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나가라고 하지 않을거라 믿었는데 엄마는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하셨다.

할 수없이 문밖에 쫓겨나왔지만 자리를 뗄수가 없었다.

 

일이 정리된 후에 엄마한테 몇년전의 물음을 재차 확인하였다.

그랬더니 엄마께서 제대로 가르쳐주시는게 아닌가..

정말 엄청난 충격과 무서움에 절대로 시집 안가겠다는 맘을 먹었었다.

오답정리가 되고 나서 화자언니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작년 총동창회때 야무졌던 화자언니와 거의 30년 만에 만나 웃으며

지난 일들을 추억했었다. 깔깔거리면서~~

 

그때 우리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엔 '길'자가 들어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실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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