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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단팥빵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7. 11. 24.

 

불과 몇 십년 전까지 그랬다.

시골에선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파종을 하여

거둬들이고 나면 겨울은 온전히 쉬는 계절이었다.

농부들의 쉼은 동물들의 겨울나기와 별반 다름 없이

한 계절을 푹 쉰거 같다.

 

어린 날의 기억으로 더듬어 가면 산골의 겨울은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아침시간 해가 중천으로 떠오를때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가게에 딸린 주막으로 아저씨들이 하나 , 둘, 모이기 시작하여

점심나절이면 그 주막에 딸린 방은 담배연기와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들로 붐빈다.

그 가운데 어김없이 있는것이 '화투'이다.

가끔 돌 사탕이나 쫀드기라도 사먹으려면 그 집으로 가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기에 그 시절엔 그 방안의 풍경이

시골의 겨울풍경이려니... 했었다.

 

열 서너 동네에서 주막은 그 집과 윗 동네로 가서 하나가 더 있었기에

동네 아저씨들에 비해 주막집은 턱 없이 모자랐던거 같다.

 

우리 아버지 역시 가끔 옆 가게로 놀러 가기도 하였고,

그 곳보다 집에서 좀 떨어진 윗 동네로  자주 가셨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윗 동네에 계셨다는 말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들은 말이다.

 

찬바람이 문풍지를 떨게 하던 겨울 초입부터 아마 이듬해 봄까지는

아버지의 외출이 내겐 어떤 희망이자 기쁨으로 다가왔다.

첫기억은 ...

저녁먹고 남폿불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을때 기침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귀가였다.

찬바람에 아버진 이불밑으로 손을 넣어야 했는데  차가운 몸으로

앉자마자 배가 아프다며 아버지 배아파 죽겠다며 배를 만져달라고

막내딸의 손을 배에다 갖다 대셨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배를 만지고 있는데

자꾸만 위로 좀더 위로 때로는 뒤로 등쪽으로 하면서 고사리 손을

괴롭혔다.

 

아버지의 가슴팍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귀하디 귀한 빵이 발견되고

난 기쁨에 얼쩔줄 몰라 폴짝거렸다.

단팥빵은 아버지 가슴에서 따스하게 내 손에 쥐어졌다.

 

지금도 날이 차가워지고 지금처럼 벼를 벤뒤의 황량한 논을 보면

겨울의 시작과 함께 아버지의 배가 떠오른다.

물론 뱃 속에서 끝 없이 서너개가 나오던 단팥빵의 달콤함까지도..

 

원래 술을 잘 못드시던 아버지께서 술냄새 난다며 한사코 뒤로 빼는

내 손을 잡아 배에다 갖다 대던 그 기억.. 단팥빵의 추억.

 

아버지의 웃음머금은 눈길이 아직도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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