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렸을적 산골 마을에는 당연히 목욕탕이 없었다.
목욕탕이란 말 자체가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시절.
설날 하루이틀 전에 꼭 해야하는 것이 목욕이었다.
정갈한 몸으로 단정히 하고, 마음도 정하게 하여 새해를 맞는 것이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는 조건이었다.
설준비로 분주하고 바빴던 엄마는 아래로 주루룩 내리 서너 명의
딸을 위해 학교에 딸린 목욕탕을 빌려 탕에다 물을 길어다 붓고
땔나무를 한뭉치 안고 가서 물을 데우셨다.
처음으로 학교 목욕탕을 이용하게 된 때가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 때 정말 이런곳이 있구나 하며 신기하고 좋아서 진종일 그곳에서
놀고 싶어했었는데......
일제시대에 지어졌던 게 아닌가 싶은 그 목욕탕은 겉모습은 창고이지만
시멘트로 둥글게 만든 탕이 있었고 둘레에 제법 앉아서 씻을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한쪽 옆으로는 낮게 물통처럼 네모난 시멘트 통에 헹굼물까지 둘 수
있는 곳이었다.
탕에 물을 채워 넣고 밖에서 불을 떼면 목욕물이 데워지던 그 때!
엄마는 물을 얼마나 많이 길어다 부었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몇 명을 씻기려면 팔이 많이도 아프셨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그 땐 정말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벌겋게 빡빡 밀어대는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싫었다.
대목맞이로 제법 클 때까지 그곳에서 목욕을 했었다.
어릴적 명절은 그렇게 몸가짐 마음가짐으로 맞이하였다.
오늘 내일 즈음에 다시 몸가짐 마음가짐하여 정갈한 심신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로 마음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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