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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추석빔.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7. 9. 22.

 

우리가 자랄땐 명절에라야 겨우 새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것도 좀 산다 하는 집에서 새옷이 가능했고,

많은 사람들은  깨끗이 빨래를 해서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었다.

자매가 많았던 우리집은  새옷이란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큰언니 오빠가 객지에서 돈을 벌기 시작한 후부터 제대로

폼잡는 명절이었다.

그것 역시도 막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학년인가 4학년때 일이다.

명절전에 보따리 장사가 옷을 가득 머리에 이고 동네에 나타났다.

계절적으로 봤을때 딱 지금같은 긴옷을 슬슬 꺼내입기 시작한 즈음이었으니까.

그날은 햇살이 따사로와 정수리가 따끔따끔하니 약간 더운 날이었다.

동네 가운뎃집에서 보따리가 펼쳐지고 시골아지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집으로 모여들어 자식들 옷을 고르고 사고... 그랬다.

 

어린 내눈에 딱 들어오는 옷을 옷장사가 입어보라길래 잽싸게 입었다.

울엄마는 돈이 없으니까 다음에 사주겠다며 벗으라고 재촉하시고.

그때 즉시 새옷을 입은 나는 밖으로 도망을 쳤다.ㅎㅎ

달리기는 맨날 꼴찌였지만 도망가는건 잘했나 보다. 필사적으로 뛰어

뒷밭옆을 어슬렁거리다 학교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해질녘에 집으로 걸어오면서 약간의 걱정도 했다.

엄마의 서슬이 겁났지만 아버지가 계신 큰방앞으로 슬그머니가서

앉았다.

엄마는 의외로 잠잠했고 아마도 별일없이 웃고 넘어가신거 같다.

매맞거나 혼난 기억은 없고 아버지의 웃음이 생각나는 걸로 봐서는.....

 

맘에 드는 옷이니까 일단 입고 도망갔다가 보따리 아줌마가 가고 나서

집으로 오면 엄마가 외상으로라도 사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처음으로 내가 고른옷이고 언니들 입던 옷도 아닌

새옷으로 빨간색 티셔츠와 약간 갈색의 바지를 내것으로 만들었다.

그 얘기를 하면 지금도 웃음이 머금어 진다.

 

이제 딸아이에게 내가 당하는 시기이다.

명절이 아니라도 소풍간다고 사달랜다.

내일은 같이 명동가서 옷사달라며 며칠전부터 볶아댄다. 들들~~

친구도 엄마랑 간다더라, 나도 이런 저런 옷을 사고 싶다는둥..

기회만 되면 재잘댄다.

추석빔이라 생각하고 하나 사주기로 했다.

근데 아들은 어떻게 빼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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