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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파이 데이!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06. 3. 14.

 오늘은 화이트데이!

모든 여인이 사탕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을 날이다.

나 역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여인으로서

사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 출근과 동시에 공장장이 건네준 큼직한 사탕 꾸러미를 건네받고

연인이 아니면 어떠하랴! 지난번 밸런타인데이에 단돈 천 원짜리

초콜릿을 남자 직원들께 쫙~ 돌렸으니(사장님 비롯하여) 하나쯤은 건지리라

생각했다. 역시 천 원의 효과는 컸다.

 

큼지막한 사탕 상자를 받고 보니 기분이 꽤 괜찮았다.

사실은 무슨 무슨 날을 안 좋아하는데 어쩌자고 바라고 있단 말인가?

밸런타인데이는 천 원짜리가 아니라 백 원짜리라도 하나 건네주는 게

도리인 듯이 빠뜨리면 뭔가 할 일을 안 한 듯 미적지근하기도 하다.

 

암튼, 그렇게 하루를 열고 잠시 후엔 늦은 출근과 함께 사장님이

핑크빛 복숭아 사탕을 내민다.

포장지가 옅은 핑크빛이라 더 이뻐 보이고 위에 매여진 얌전한

리본까지도 빛을 발한다.

이런 간사한 마음! 어찌하여 아줌마가 이런 작은 선물에도 이리

좋아하는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지난번 밸런타인데이에

너무 약소하게 드린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마트에서 에누리하는 걸 샀으니,

하긴 뭐! 마음이려니 받아줬겠지!

실은 어제 퇴근 무렵에 방글라데시에서 온 '모니'라는 직원이

만 원짜리를 내밀며

 "누나 사탕 사 오세요"했다.

나를 주려는데 내게 사 오라는 그 순수함에 마다치 않고 알았다고

하면서 들른 마트에서 아줌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맛있고 값싸고 양 많고,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탕을 향해

충실하게 골랐던 그 사탕이 하필이면 일본서 물 건너온 거라 약간

찜찜했지만, 알려진 바로 그 사탕이 참 맛있는 종류였기에 애국심을 잠시 접었다.

소금 사탕, 흑사탕, 땅콩사탕 세 종류를 골고루 사서

아침 출근길에 들고 갔다.

 

모니에게 사탕 사 왔다며 잔돈을 건네고 사탕을 옆에 언니와

나누고 더하고 곱하기해서 자리 옆에 한 보따리 두었는데

어찌 웃음이 나오던지!

남자직원들께도 인심 쓰듯 몇 개씩 돌리고 그렇게 아줌마의 화이트데이는

화려하게 막을 내리는 줄 알았죠?

 

퇴근해서 집에 오니까 또 하나의 사탕 꾸러미가 있었다.

화려하고 충만한 오늘이지만 이런 데 연연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자꾸만 끌려가는 자신을 보게 되어 좀 걱정이다.

 

수학 좋아하는 아들 말로는 파이 데이라는데 뭔 말인가 했더니

3.14 파이 데이란다. 그 말이 맞는 말이다.

 

이제 정말 날 기다리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설거지와 만나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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