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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 영화, 공연)

두뇌 체조(가와시마 류타)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9. 12. 7.


얼마 전, 딸에게 온 택배 뭉치가 묵직했다. 느지막이 퇴근 한 딸이 택배를 풀더니 불쑥 내민 것이 '치매 걸린 뇌도 좋아지는 두뇌 체조'라는 책이다.

이 책을 내미는 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건망증이 점점 심해져서 걱정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서 훈련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떨떠름했다. 시큰둥한 얼굴을 눈치챘는지

 "엄마, 지금 아주 건강하고 좋은데 그래도 한 번 읽어 봐~ 아버지랑 둘이 읽으면서 문제도 풀고 그러셔~" 란다.

우리는 안다. 남편이 절대로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언제 다잡아 앉아서 문제를 풀게끔 애 다루 듯할 확률이 높다.

딸은 책 내용을 대충 파악한 상태인지 문제를 풀 때는 다른 종이에다 답을 쓰고 다음에 또 문제 풀고 그러는 것이란다. 책을 두고두고 활용하라는 말이다. 식탁에 던져놓았던 책을 찌개를 끓이다가 잠시 짬이 나서 읽었다. 글씨가 큼지막해서 읽기 쉬워 책장이 훌렁훌렁 잘도 넘겨졌다. 뒤로 가니 문제 푸는 것이 주욱 나온다.

이참에 한 번 풀어볼까 싶어 이면지를 찾아놓고 풀기 시작했다. 정답이 아니어도 좋으니 무조건 시간 안에 푸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 있었다. 스톱워치를 실행하며 문제를 푸는데 덧셈과 곱셈에서 주어진 시간이 5분이라면 대부분 2분 안에 풀기도 하고 2분이나 3분을 조금 넘기고 풀었다. 이대로라면 한동안 걱정 붙들어 매도되겠지 하는 마음에 낱말 푸는 곳을 슬며시 넘겼다. 2분 동안 외우고 나서 몇 개를 맞히는지 적어 보라는데 자만심이 극에 달한 나는 2분이라는 시간은 재지 않고 대충 훑어본 다음 종이에다 외운 낱말을 써 내려가다 깜짝 놀랐다. 빼곡히 적힌 한 페이지에서 12개를 적으라 했건만, 고작 11개를 적었는데 그나마 하나는 중복된 것이었다.

이게 뭐라고 갑자기 심란해지고 걱정이 슬슬 되었다. 아무래도 하는 일이 경리 업무라 그런지 계산에는 강해도 낱말에는 아니구나 싶다. 그러다가 책 잡은 김에 뒤에까지 읽었다. 치매에 좋은 훈련이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 사물을 보고 이름 말하기가 좋고 많이 걷는 게 좋고 반찬을 손수 만들어 먹는다거나 스위치 하나를 누르면 되는 밥이나 빨래, 청소를 옛날처럼 손으로 하나씩 하는 것이 뇌에는 아주 좋다는 내용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미 기계에 익숙해진 세대라 시간 들여 공들여 솥밥을 하고  손빨래를 하고 무릎 꿇고 청소하기는 어렵다.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있다. 대신 간단한 게임이나 많이 움직이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으며 상상하라는 주문이다. 주먹으로 가위 바위 보를 왼손 오른손이 같이 하면서 오른손이 주먹이면 왼손은 가위로 시작하는 훈련도 있고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뇌 훈련에 좋다는 내용이다.

일단 실천은 책상, 서랍, 의자, 냉장고. 보이는 것들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좋고 100에서 7을 빼고 다시 93에서 8을 빼고 다시 6을 빼든 5를 빼든 그런 놀이를 하면 아주 좋다고 한다. 하루 10분에서 15분만 해도 뇌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오늘도 혼자 식탁, 부엌 이러먼서 다녔다. 오늘같이 매운 날씨엔 꼼짝없이 집에 있게 되는데 텔레비전 오래 보면 딸이 쨍알거려서 문제도 풀고 시집도 읽고 이렇게 딸이 물려준 노트북으로 블방 나들이도 한다. 남편은 동창회가 있다고 눈길을 뚫고 수원으로 갔다. 딸이 네일숍에 간 사이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이 글 올려놓고 영화나 볼까 생각 중인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피자랑 치킨 세트를 사 오겠단다. 오늘도 다이어트는 글렀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데 오후 7시가 다 되어간다.








책이 똑바로 펼쳐지질 않아서 참 성의 없어 보인다. 위에 숫자풀이한 시간이 메모되어 있는데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바로 위의 그림은 빨리 말하기인데 동물이 반듯한 그림은 똑바로 말하고 거꾸로인 그림은 동물 이름을 거꾸로 말해야 한다. 제한시간 30초였는데 45초인가 걸렸다. 숨 넘어가듯이 외쳤지만 그랬다.

오늘 우리 동네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낮고도 구석진 곳에 살기에 부엌 창으로 주차된 곳의 사진을 찍고, 베란다 뒤로 와서 아파트 산책로에 길게 이어진 눈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알뜰히도 잘하는 게 없다. 사진도 글도 참 거시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