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달 전에 살구 꽃님이 보내주신 제비꽃 사진이다.
숲속에서 제비꽃을 만나자 내 생각이 나서 일부러 찍었다며 보내 주셨다.
올봄 나는 실제로 제비꽃을 이렇게 많이 만난 적 없어 감사하다.
출근하는 버스에서 매일 만나는 공주님이 있다. 그냥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고 버스 기사도 그분에게
"공주님이네, 공주님!" 한다. 물론 듣는 데서 하는데 눈치가 좋아하시는 것 같다.
함께 타고 세 정거장째 내리는 제법 나이 지긋한 분이다. 항상 공주처럼 나풀나풀하고 근사하며 반짝이가 많이 붙어 있는 옷에다 망사로 된 까만 모자를 쓰거나 큼지막한 꽃이 달린 새파란 모자를 쓰고 더러 연분홍 모자에 작약꽃이 달린 모자도 쓴다. 아주 빨간 색이나 진한 청색 또는 녹색과 샛노란 옷을 즐겨 입으신다. 서울 시내에서도 구석구석 뒤져야 겨우 볼 수 있을 그런 차림새다. 참, 머리는 항상 올리고 화려한 핀 서너 개로 장식을 했고 망사 모자는 이마를 반 덮이게 쓴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하였던가? 그것에 맞게 신발도 화려하다. 짙은 자주색 단화의 발등에 꽃이 넘치게 피어 있는 날이 많다. 보석이 박혀있는 신발을 신은 날은 아침 햇살에 반짝 빛을 발하기도 하며 신데렐라 구두보다 더한 시선을 끈다.
아침마다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그분이 어느 날 버스 기다리는 동안 말을 걸어왔다. 어디 다니며 뭘 하느냐고. 어안이 벙벙하여 그냥 사무일 하고 있으며 경리 업무를 본다고 했다. 본인은 중국집을 하고 있고 경리가 필요하다며 월급도 많고 편하니까 그분 중국음식점으로 오란다.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이 된 거다. 지금 다니는 곳에 다녀야 한다고 거절 했다. 그럼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신다. 이렇게 잠시 대화를 나눴고 다음 날부터는 당연히 인사를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화려함을 좋아한다는 그분은 전생에 마리 앙투와네트가 윤회로 이런 동네에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분이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단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좍 훑어본다. 아니 볼 수밖에 없다. 안 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나 역시 처음엔 이상해서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치렁대는 치마가 버스를 타며 발자국을 쓸고 지나고 내리면서 출구를 싹 쓸고 내렸다. 이젠 자주 만나다 보니 치마 들고 타시라는 말까지 건넨다. 요즘은 내가 타기 전에 이미 타고 계시는데 집이 안쪽이라 버스 시간을 알아 두어 한 정거장 전에서 타신단다.
오늘은 먼저 타고 있다가 내가 버스를 타며 인사를 하니
"자기를 만나서 반갑네" 하신다.
어제도 만났다. 주춤거리며 그분 뒷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내서 내민다. 하얀 불두화 서너 송이가 들어 있는 중에 한 송이를 주셨다. 꽃대가 짧아서
"이렇게 짧게 꺾으셨어요?"
하고 물으니 버스 기다리며 담장 너머 겨우 꺾었단다. 그냥 두고 보면 좋을 것을 굳이 꺾은 소녀 같은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나라면 절대 꽃을 꺾지 않고 두고두고 버스 기다리며 쳐다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었다만 갖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해해야지!
꽃을 돌려드리니 가져가서 책상에 꽂아 두라고 기어이 주신다. 내친김에 물어봤다.
"속 눈썹은 붙이셨어요?"
그렇단다. 이른 아침 출근인데도 완벽하게 눈화장까지 하고 머리를 올리고 커다랗고 화려한 핀을 꽂고 망사 모자까지 쓰고 화려하게 꾸미고 나서는 그분은 대단하다. 단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김치를 봉지에 겹겹이 넣어 들고 다니거나 찌개를 해서 봉지에 겹겹이 넣어 들고 다닌다.
"반찬을 통에다 담아 가시면 더 낫지 않을까요?"
라는 말까지 하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갖고 가면 또 가지고 와야 하잖아. 귀찮아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아침마다 그분의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짙은 마스카라에 붉은 입술이 비 오는 아침엔 그저 화사하다. 꽃이다. 잊지 않고 하시는 말씀
"언제 놀러 와, 내가 짜장면 줄게!"
내일 아침 버스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은근 기분 좋은 만남이다.
싫은 사람이 줘도 꽃은 죄가 없다. 그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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