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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염색하고 오는 길에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8. 3. 21.

 날이 갈수록 염색하는 기간이 조금씩 짧아진다.

 전에는 두 달에 한 번쯤 하던 염색을 50일 만에 하다가 또 45일 만에도 한다.

 긴 머리라 겨울엔 억지로 들추지 않으면 대충 버티다 느지막이 염색했는데 봄볕이 사방 뿌려지는 날엔 모두가 내 머리만 쳐다보는 듯하여 고개를 숙이지도 뻣뻣하게 들지도 못하고 신경이 써진다. 이번엔 지난번 염색날짜와 가까운 듯하여 화장대 앞 달력을 유심히 살폈으나 염색한 날을 메모해두지 않았나 보다. 아무리 찾아도 메모가 없다.

중요한 약속이나 행사가 있는 날은 항상 메모를 해두고 뭣보다 아침이면 눈뜨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깨알 같은 숫자를 써넣은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렇게 해를 보내고 모아 둔 탁상 달력이 2015년부터 벌써 네 개째인데 해부턴 낭창하던 허리가 두툼해지고 50kg 남짓하던 몸무게가 숫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발악하듯 주말이면 산으로 오르며 건강을 위한다 했지만, 목적은 몸무게 느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달력의 메모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는데 지난날의 궁금한 점도 넘겨보면 그래서였구나! 하고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니 좋은 점이 많았다. 물론 염색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알고 싶었고, 머릿결에도 좋지 않으니 최대한 느슨하게 거리를 두고 하고 싶었다. 겨울로 가는 늦은 가을이었다면 조금 더 참았을 텐데 봄이 오는 길목이라 함께 봄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새단장을 하듯 지난주 수요일에 염색을 했다.

 단골 미용실은 항상 하는 염색약으로 알아서 수년은 젊게 만들어 준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는 듯해 커터칼로 대충 잘라서 다녔는데 원장님이 알아서 잘라주니 상큼함이 느껴진다. 염색하니 앞머리 자르는 건 서비스다. 집도 우리 옆 아파트이고 나이도 나보다 2살 위라 각별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수년을 단골로 다니니 간식을 사 들고 가기도 하고 들린 시간에 간식이라도 먹는 날이면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사는 게 별거인가? 이러고 살면 되는 거다 싶다.

 염색하고 오는 길에 고깃집 앞에서 옛날처럼 찹쌀떡 가방을 멘 아저씨가 유심히 쳐다보며 다가왔다. 망개떡과 찹쌀떡이 있다며 좀 사라기에 떡을 좋아하지 않아도 돕는 마음으로라도 사야지 하며 주춤 섰는데 아뿔싸! 지폐가 없다. 좀 전 3만 원을 미용실에서 계산하고 나오며 지갑이 비었다는 게 생각났다. 서비스로 머리도 잘라주고 고마워서 카드로 계산을 않고 현금으로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카드를 주로 쓰고 출퇴근 시에도 카드로 버스를 타고 다니 딱히 현금 쓸 일이 없는 데다가 전날 아들이 순대 사서 먹겠다며 천 원짜리 몇 장 빌려달라기에 그마저 꺼내줬으니 망측하게도 지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어머나 현금이 하나도 없네요! 하고 종종걸음으로 오는데 괜히 미안했다. 음식점이 즐비한 이곳에서 망개떡이든 찹쌀떡이든 누가 사서 먹겠나 싶었다. 봄이 오는 날에 떡을 팔러 다니는 분이라니! 오래간만에 그런 분을 뵀다. 몸이 약간 불편해 보이는 분이라 마음이 쓰인 저녁이었다. 미용실에서 카드로 계산할 것을 하고 늦은 후회를 했다.



청송 주산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산발




지난 수요일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목요일 조퇴하고 영천엘 갔다.

장례식장에서 하루 자고 금요일 오는 길에 청송 주산지에 들렀다.

추워서 뛰다 걷다 하며 구경하고 중간에 수안보 연수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토요일 돌아왔다. 아직 봄을 느끼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여전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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