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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저녁 풍경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7. 8. 22.


 기나긴 날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조금 오다 말다 그러다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잠시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짱하게 해가 뜨기도 한다.

 어제는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비가 방울방울 손가락으로 하나둘 세어도 될 만큼 내렸기에

우산을 들고 갈까 말까 하다 물방울무늬 파랗게 그려진 가벼운 비닐우산 하나를 들나섰다.

 남자가 따라나서며 자꾸 우산이 콩만 하다고 머리도 안 들어가겠다며 중얼거렸다.

 아파트 입구를 채 나서기도 전에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쏟아졌다.

 큰 우산으로 바꾸기 위해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콩만 한 우산이라 머리 빼고 다 젖었다.

 덩치 크고 머리 큰 남자와 함께 쓰기엔 까딱하다 머리까지 젖을 크기였다.

 며칠 전에 아들 친구가 함께 차를 타고는 아우디라 쓰인 아주 큰 우산을 우리 차에 두고 내렸던

기억이 났다.

 그 우산이면 덩치 큰 남자와 내가 함께 써도 어느 정도는 가려지겠다 싶어 콩만 한 우산은 두고

시커멓고 아주 큰 아우디 로고가 그려져 있는 듬직한 우산을 챙겼다.

  "우리 집에 아우디 차 있는 줄 알겠네! "

  "아들 친구네 차는 아우디일까?"

  "차가 좋아서 그런가? 우산도 들입다 좋네!"

  "우산 찾으러 오려나? 갖다 줘야 하나?"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빗속을 걸었다.

 서른 걸음도 채 걷기 전에 빗방울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아우디 우산은 걷는 내내 너무 크고 무거워 짐이 되었다.

 콩만 한 비닐우산으로 다시 바꾸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쪽 하늘은 불이 난 듯 노을이 타올랐고

동쪽 하늘은 시커멓게 비를 몰고 헤매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 즈음이라 여기며 돌계단에 앉아 저녁 풍경에 취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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