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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메타세쿼이아 그루터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7. 6. 29.

그루터기가 눈에 밟혔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24~5년 만에 잘려나갔다.

나는 가만 나무의 나이테를 하나둘 세었다.

억울했다.

관리실에서 서명을 받는다며 들고 다닌 용지엔

아파트 뒤에 심어진 나무를 자르는 데 찬성이냐 반대냐

동그라미와 가위표를 하라 했다.

남편은 훤한 게 좋다며 한 표를 자르는 곳에 표기했단다.

하필 수영장 간 날에 와서 남편이 사인했다기에 왜 그랬냐고

언성을 높이며 티격태격했지만, 자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어느 저녁 산책길에 경비실 앞에 여럿이 모여 왕왕대는 소리에 멈춰 섰다.

나무를 자르지 말아야 한다는 옆 동의 젊은 남자는 수십 년이 된 나무라

아깝고 그늘이 좋다며 다음 날 자른다는 소식에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참에 나도 함께 목청을 높였다.

서명을 바꾸고 싶다고 말도 안 된다며 억울해했다.


깔끔하고 시원하다며 찬성한다는 남편에게

이렇게 자라기까지의 과정과 뭣보다 훤히 보이는 건물들보다

키 큰 나무가 주는 행복이 얼마인지, 가끔 아파트를 돌며 오붓하게

걷는 기쁨이 얼마만 한지 아느냐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다음 날 이렇게 잘렸고 며칠 후 아쉬움이 가득한 오솔길을 홀로 걸었다.

다행인 건 우리 동 뒤엔 자르지 않았다.

언제 다시 자를지도 모르겠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바람을 막아 주듯 해서

메타세쿼이아가 부디 이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기를 빌어본다.




나무를 자르고 나니 아래 다른 아파트가 전보다 더 훤히 보인다.


우리 동과 나란한 옆 동의 뒤편인데 은행나무도 정리한 모양이다.

메타세쿼이아가 잘린 곳에서 우리 동 뒤로 가는 오솔길

우리 집 뒤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나무.


출입구 앞 화단의 장미가 탐스러운 여름날!


긴 가뭄에 고개 숙인 장미지만 연분홍 은은함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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