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가 눈에 밟혔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24~5년 만에 잘려나갔다.
나는 가만 나무의 나이테를 하나둘 세었다.
억울했다.
관리실에서 서명을 받는다며 들고 다닌 용지엔
아파트 뒤에 심어진 나무를 자르는 데 찬성이냐 반대냐
동그라미와 가위표를 하라 했다.
남편은 훤한 게 좋다며 한 표를 자르는 곳에 표기했단다.
하필 수영장 간 날에 와서 남편이 사인했다기에 왜 그랬냐고
언성을 높이며 티격태격했지만, 자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어느 저녁 산책길에 경비실 앞에 여럿이 모여 왕왕대는 소리에 멈춰 섰다.
나무를 자르지 말아야 한다는 옆 동의 젊은 남자는 수십 년이 된 나무라
아깝고 그늘이 좋다며 다음 날 자른다는 소식에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참에 나도 함께 목청을 높였다.
서명을 바꾸고 싶다고 말도 안 된다며 억울해했다.
깔끔하고 시원하다며 찬성한다는 남편에게
이렇게 자라기까지의 과정과 뭣보다 훤히 보이는 건물들보다
키 큰 나무가 주는 행복이 얼마인지, 가끔 아파트를 돌며 오붓하게
걷는 기쁨이 얼마만 한지 아느냐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다음 날 이렇게 잘렸고 며칠 후 아쉬움이 가득한 오솔길을 홀로 걸었다.
다행인 건 우리 동 뒤엔 자르지 않았다.
언제 다시 자를지도 모르겠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바람을 막아 주듯 해서
메타세쿼이아가 부디 이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기를 빌어본다.
나무를 자르고 나니 아래 다른 아파트가 전보다 더 훤히 보인다.
우리 동과 나란한 옆 동의 뒤편인데 은행나무도 정리한 모양이다.
메타세쿼이아가 잘린 곳에서 우리 동 뒤로 가는 오솔길
우리 집 뒤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나무.
출입구 앞 화단의 장미가 탐스러운 여름날!
긴 가뭄에 고개 숙인 장미지만 연분홍 은은함이 눈길을 끌었다.